몽골사신의 피살로 국교는 단절되고 |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고려편 #287] KBS라디오 20100418 방송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고려편 #287] 몽골사신의 피살로 국교는 단절되고 | KBS라디오 20100418 방송 방송일자 2010-04-18 진행자 김석환 연출자 임종성 작가 이상락 출연 초록 * 고종 8년, 몽골의 사절단이 여섯 차례에 걸쳐 고려에 와서 국왕을 알현하거나 혹은 연회에 참석할 때 보인 거침없고 무례한 태도 * 몽골 사절단의 문제로 고려 조정의 고위관리들이 최우의 집에 모여 대비책 논의 - 북방 국경지대의 방어진지를 튼튼히 구축하기 위해 의주, 덕원, 화주, 철관 등에 성을 쌓자는 의견이 제시 * 고종 8년 12월, 최우가 아버지 최충헌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한 이우 처음으로 대대적인 인사 단행 - 인사에 등용된 일물들의 성향과 이 당시 최우의 권력기반 * 고종 9년 7월, 동진군사 1만여 명이 정주를 침범 - 고종 7년 반역을 일으켰던 한순과 다지의 무리 중 일부가 동진군사에 붙어 반역을 일으킴 의 길잡이 노릇 - 몽골의 속박을 벗어난 동진의 군사들이 고려에서 민란을 일으킨 세력을 등에 업고 고려의 국경을 침범 * 고종 10년 정월, 추밀원 부사 오수기가 중장의 여러 장수들과 함께 문신들을 모두 죽이고자 모의하였지만 모의가 발각되어 그들은 유배를 당하거나 혹은 지방으로 좌천 * 고려 고종시기 고려와 일본의 관계 * 고종시기에 왜의 남해안 침공기사가 타나난 배경 * 고종 11년(서기 1224년), 동진국에서 보내온 사신이 가져온 동진국왕이 고려에 보낸 첩문의 내용(몽골과 관계를 끊은 동진과 우호관계를 맺고 교류하자는 제의) * 나라에 특별한 공을 세웠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고려사 열전 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김의원이라는 인물의 기록 * 이극인이 여러 장군들과 최우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 * 고종 12년 정월에 고려를 찾은 몽골 사신단이 예전과 다른 점 * 몽골 사신단 저고여 일행이 살해당하는 사건 발생 - 몽골은 당장 국교를 단절하겠다고 통고 * 몽골이 사신단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지 7년이 지나서야 고려를 공격해 온 배경 - 몽골과 국교가 단절되고 나서 몽골이 침략을 해오기까지 7년 동안 고려가 대비했던 것 인서트리스트 01 몽골의 공격에 대비한 고려의 대응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07:02 07:44 02 고려가 몽골의 침공을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는 방안으로 성을 쌓았다는 것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지적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10:12 10:50 03 최충헌이 자신의 정권유지에만 신경을 쓴 반면 그의 아들 최우는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11:43 12:29 04 최충헌과 최우의 침략세력에 대한 대처능력과 태도를 단순 비교해서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13:03 13:48 05 최우가 권력승계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대대적인 인사는 최우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16:28 17:10 06 최우가 권력을 승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행된 인사이므로 최우가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17:30 18:13 07 최충헌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한 후 처음으로 인사가 시행될 시기 최우의 권력기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18:47 19:28 08 최우가 권력승계 이후 시행된 이사에 맡은 참지정사 이병부상서 판어사대사 관직은 높은 지위이긴 하나 제도적으로 인사를 전횡할 위치를 확보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하는 이익주 서울시립국사학과교수 19:41 20:21 09 고종 9년 7월, 동진군사 1만여 명이 고려의 정주로 쳐들어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24:07 25:27 10 고려 고종시기 고려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30:19 30:58 11 고려 고종 시기의 일본 가마쿠라 막부시대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31:09 31:55 12 고종시기 금주(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 왜 침략 기사가 나타난 배경과 고려를 침략한 왜구의 존재는 무엇인지 설명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32:25 33:03 13 몽골의 사신이 고려로부터 국신과 예물을 받아가다가 예물은 버리고 국신인 수달피만 가져갔다는 고려사절요 기사 내용을 분석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36:54 37:41 14 추밀원 부사 김중귀가 최우를 살해음모를 배후 조종했을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42:38 43:21 15 최우를 제거하려는 모의가 조직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은 최우의 권력기반이 공고하게 갖춰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44:10 44:59 16 고종 12년 정월, 함선진(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으로 들어온 몽골 사신단이 에전 사신단과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47:09 47:57 17 몽골이 자국의 사절단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후에 고려를 공격해 온 이유를 설명하는 이익주 서울시립대국사학과교수 51:52 52:40 18 몽골과의 국교가 단절되고 몽골이 침략 해오기까지의 7년 동안 고려는 어떤 대비를 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김호동 영남대국사학과교수 53:08 5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