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없는 차를 탄 이유, 1조원을 한방에 벌게 된 사연,  아이폰 출시 전설의 프리젠테이션, #애플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 #역사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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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이 추구하고, 계속 시도하라 " 스티브 잡스: 완벽과 결함이 공존한 혁신가 스티브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고, 이 사실은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린 잡스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믿음과 동시에,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외로움 속에서 성장했다 이는 그의 독창적인 사고와 끊임없는 도전 정신의 밑바탕이 되었지만, 종종 타인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년기와 정체성의 씨앗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혁명 중심지에서 자라며 기술과 혁신의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생 시절에 휴렛팩커드(HP) 캠프에 참가하면서, 그의 전자 기기에 대한 열정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기술적 재능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워즈니악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의기술에 대한 열정과 혁신적인 사고는 남다른 팀워크를 만들어 냈다 블루박스를 개발하며 잡스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품게 되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일화 잡스는 우연한 기회로 게임 회사인 아타리에 게임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된다 사장인 부슈널은 잡스를 매우 좋게 평가하였다 그는 잡스에게 벽돌 깨기 게임을 설계할 것을 지시하면서, 칩을 50개 미만으로 사용하면 줄어든 칩에 비례해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보수를 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도움을 청한다 워즈니악은 잡스의 독촉에 못이겨 사흘 밤낮을 독감으로 고생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며칠 만에 45개의 칩만으로 게임을 설계해 냈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700달러밖에 못 벌었다고 속이고, 350달러만 주었다 잡스가 아타리로부터 받은 돈은 5,000달러였다 잡스의 기행 잡스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았다 번호판을 달면 차 디자인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실상은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대기 위해서였다 도둑에게 차를 털린 이후부터 잡스는 항상 차가 잘 보이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주차 했다 그러나 장애인이 아니다 보니 대놓고 주차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법적으로 차 구입 후 6개월 안에 번호판을 달면 된다 그래서 잡스는 6개월마다 같은 종류의 새 차를 리스하면서 번호판이 없는 차를 이용 했다 인도 여행과 불교의 영향 대학을 중퇴한 후, 잡스는 내면의 진리를 찾기 위해 인도를 여행했다 이 여행은 그의 인생에서 철학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인도의 한 스님을 만나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고, 간소함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집중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삶과 경영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애플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철학은 그의 불교적 통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철저한 채식주의를 고수하였다 암 치료를 받을 때 의사가 육식을 권유했다 단백질 섭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스는 의사의 권유를 마다하고 자신의 식단을 고집했다 잡스는 나중에서야 의사의 권유를 따랐는데, 이 때문에 암 치료에 있어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애플의 탄생과 초창기 성공 1976년,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다 그들의 첫 제품 애플 1은 컴퓨터 시장에 대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애플 II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며 실질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잡스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을 혁신의 핵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협력보다는 독주를 선호했고, 이로인해 팀원들과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갔다 매킨토시와 갈등의 씨앗 Apple II, Apple II Plus 이후로 애플은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Apple III가 망하자 잡스는 GUI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는 Lisa 프로젝트와 Macintosh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였다 1984년, 잡스는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이며 컴퓨터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발표회에서 그는 "컴퓨터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을 확장하는 도구"라며, 매킨토시의 철학에 관한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팀원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이는 곧 애플 내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퇴출과 새로운 시작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쫓겨난다 그는 이 사건을 두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였지만, 동시에 최고의 배움이었다"고 회고했다 애플에서 쫒겨난 잡스는 넥스트(NeXT)를 창립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의 NeXT는 저가형 워크스테이션을 판매했지만 시장에서 참패했다 결국 잡스는 결단을 내려 1993년, NeXT의 워크스테이션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픽사 1986년 잡스는 NeX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픽사를 인수한다 그런데 이 결정은 잡스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픽사는 틴 토이라는 단편 3D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받게 된다 잡스는 3D 애니메이션 산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자비를 들어가며 3D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잡스는 디즈니와 매우 불공정한 애니메이션 제작 계약을 맺는다 디즈니에서 작품과,캐릭터, 제작의 통제권은 물론 수입의 87 5%를 갖는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잡스는 욕심을 버리고 디즈니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1995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가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진짜 대박 성공은 따로 있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 개봉 전부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봉 일주일 후 픽사의 나스닥 상장을 계획했다 그 계획은 맞아 떨어졌다 당시 잡스가 보유하고 있던 픽사 지분 80%의 가치는 순식간에 1조 원이 넘게 되었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과 픽사 덕분에 잡스는 실패한 CEO에서 차세대 테크 산업의 리더로 복귀한다 2006년 월트 디즈니는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하였다 이로써 스티브 잡스는 월트 디즈니 지분의 7%를 보유하게 되었다 2012년 픽사는 본사 빌딩을 새로 단장하면서 건물 이름을 "스티브 잡스 빌딩"으로 명명했다 애플로의 복귀와 부활 잡스도 없고 워즈도 없던 Apple은 계속된 부진으로 인해 겨우 연명만 하는 "썩은 사과"로 전락했다 결국 1996년 애플은 NeXT사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경영 고문으로 불러들이는 결정을 했다 잡스가 Apple에 돌아왔을 때 Apple은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함과 세련됨을 강조하며 제품 라인을 정리했고, 아이맥(iMac)을 통해 애플의 부활을 알렸다 발표회에서 그는 "기술은 복잡하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잡스는 경영권을 잡은 지 1년 만에 3억 달러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을 연출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