ジャパンフィリピ教会礼拝(2022년7월24일 재팬빌립보 주일예배)

ジャパンフィリピ教会礼拝(2022년7월24일 재팬빌립보 주일예배)

説教: 能瀬さとし兄弟(노세사토시형제) 説教題 「 一つとなること 하나가 되는 것 」 聖書朗読 요한복음17:20~26 ヨハネによる福音書17:20~26 (新共同訳) 代表祈祷: 金・ヒョンジョン執事                       聖書朗読: 李・ソンミ執事 하나가 되는것~~~ 먼저 첫 번째로 단합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전에서 단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둘 이상의 일이 하나가 되는 것. 특히 둘 이상의 사람이 어떤 목적을 향해 마음을 모으는 것. 또 단순히 의지, 감정이 같아지는 것" 입니다. 의견이 단합되고 생각이 단합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정리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됨과 단합이라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가 말한 것을 모두 찬성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인간적인 단합도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들의 생각이 하나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바벨탑과 같은 비극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단합을 하고자 할 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자신들의 욕심에 의한 단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도 그렇습니다, 만약 자신의 힘으로 하나가 되려고 해도 그것은 헛된 무리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그리스도인이 인간적으로 단합하려다 성경적으로 단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그 중심에 없다면 그것은 단지 모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단합이란 그저 함께 모이는 것도, 한 사람의 의견에 그저 찬성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선교 파트너였습니다. 함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든지 여러 경험을 하고 박해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의견이 심하게 충돌했습니다. 사도행전 15:37-40에서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마가요한이라는 인물 때문에 서로 심하게 싸웁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예전에 선교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바나바는 그를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바나바의 이름은 것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분명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바울은 그런 사람은 데려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미숙했을까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게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성령으로 채워졌던 인물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의견은 좁혀지지 않고 부딪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선교여행 후에 바울은 마가요한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도움이 됐 자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1절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해도 하나님을 위해 일해도 갈등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단합이나 하나가 된다는 것이 꼭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본교회과 한국교회에는 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 많은 교단이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 각각 교단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고 했습니다. 힘이 약하다는 것을 말하죠.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세세한 교리보다는 복음입니다. 세세한 교리에 따라 의견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러한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거룩한 복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우리의 죄가 용서됐다는 부분에서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의견 차이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갈등을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핵심 부분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중 핵심 부분을 놓치지 말고 서로 같은 길을 걸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이러한 사례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초교파와 로잔 운동의 갈등입니다. 로잔 세계선교운동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회 로잔 세계선교회의에서 탄생한 복음파 크리스천의 세계선교 네트워크입니다. 그들의 모토는 전교회가 전 세계에 온 복음을 가져다 주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같은 비전, 목적을 가진 전 세계의 리더들이 모여 하나되고 복음이 추진되기 위해 협력하는 운동입니다. 즉 세계 선교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이어가기 위한 플랫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단합하려는 정신과 단합중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교회나 혼자서는 복음을 전하는 데 한계가 있고 못하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운동과 단체를 통해 점점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길 바랍니다. 시편 133:1-3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 단합는 바로 천국의 전미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듯이 모든 백성과 민족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요한계시록 7:9-10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그럼 어떻게 일치를 경험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어로 죄는 SIN입니다만, 그 중심에는 I(나)가 있다고. 만약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으로, 자존심으로, 죄로 인해 의견을 떠넘기려 한다면 또 남을 비판한다면 거기에 단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움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본다면 갈등은 생겨도 최종적으로 단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I(나)가 아니라 We(우리)라는 생각으로 바꿉시다. 겸손한 마음가짐을 한 사람 한 사람이 뭉치고 단합으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 겸손 그리고 단합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34-35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지막으로 왜 단합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23-2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곳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곳입니다. 이 마지막에 기도하신 주제는 단합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합을 위해 기도하신 것은 그만큼 단합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어쩌면 서로 원망하거나 싸울 가능성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단합을 원하시기 때문에 이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분명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죄인의 허물을 벗고 예수님의 보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팬 빌립보 교회는 일본 선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부터 몇 번 말씀드렸듯이 교회에 단합이 없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주변에서 이 공동체를 봤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기 위해서는 단합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에게 있어 점점 단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 넘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일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주변에 늑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늑대는 잘못된 가르침, 즉 이단을 가리킵니다. 최근에 학교 갔을 때 거기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있었는데 어떤 2명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조금 조사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의 어떤 이단이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도 어떤 이단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런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에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7:15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바울도 갈라디아서 5:1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