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한인성당 - 나해 사순 제5주일 미사(2021. 3. 21.)
†찬미예수님 어느덧 사순시기 다섯 번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벌써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사순시기 종반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때, 우리 형제 자매님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신지요? 여전히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마음이 크게 요동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보면, 허망하고 속절없이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리셨지만, 당신을 향해 몰아치던 악마의 폭풍같은 유혹을 의연히 받아 넘기신 거대하고 웅장한 산과 같으신 주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우리도 꿋꿋이 지금의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여정 마지막 해 파스카 축제 때가 되어 세 번째로 예루살렘에 당도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상당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밀알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 자신이 죽음으로써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는 건 지당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관계 안에서도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 목숨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살 수 없을 것이고, 이웃을 배려하고 우선시해준다면 본인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잘 아시는 얘기 있죠. 천국과 지옥의 차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진수성찬이 잘 차려져 있는 건 똑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가 엄청 기다란 젓가락이라고 하죠. 천국의 사람들은 너무나 맛있게 그 진수성찬을 즐기는 반면에, 지옥 사람들은 절대로 그 음식을 맛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먹여주면 되는데, 지옥 사람들은 그 생각을 결코 하지 못하니까요. 죽어서 가는 지옥과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한편으로는 흡사한 면이 꽤 많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바로 현실에서의 지옥의 모습입니다. ‘올바르지 않아도 되니까 꼼수나 사기를 쳐서라도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올바른 방법이 아니더라도 반칙을 써서라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그저 목표로 삼은 것을 얻어내기만 하면 된다’, ‘이 길이 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이익을 위해 악의 길, 거짓과 어둠의 길을 택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바로 지옥의 영혼들, 또는 지옥에 갈 영혼들의 가치관입니다. 그 결과로 결국은 누군가는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분명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고, 어디 하소연할 곳 없이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사라져 가는 존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나 하면서 통탄을 금치 못할 마음이 있다가도, 그럼에도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초연히 흘러가는 것을 보면, 그게 다 소리 없이 드러나지 않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천당의 예비 시민으로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의연히 죽어 묻히는 밀알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분에 넘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 능력 밖의 것을 해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혹여라도 내 가치관 속에 “올바르지 않아도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이다. 올바른 방법이 아닌 반칙을 써서라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이 길이 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의 길을 택할 수 있다.”라는 의식이 있다면, 그것을 깔끔하게 버리는 것, 혹여 그런 가치관이나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마저도 깨끗이 비워내는 것, 그게 천국의 삶을 사는 모습인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은, 그 죽음이 바로 진정한 천국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하신 최후의 교육이면서, 살아있는 교육이었던 겁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목숨 걸만한 상황이 흔치는 않죠.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진정 감사하고, 그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결핍된 이들과 나누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인정하실 삶, 자그마한 밀알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순 제5주간,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