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4 석조전 덕수궁 ▷ 2021/12 * 국립현대미술관

#0624 석조전 덕수궁 ▷ 2021/12 * 국립현대미술관

#0624 (#0198 - 코르나로 호텔 [P] 기둥의 건축양식) (#0201 - KBS방송국 [S] 건축양식) (#0527 - 교각 염창교 [S] 트라야누스 원주) ↔ (#0550 - 국립현대미술관 소격동 서울) @ (#0616 - A 덕수궁 경운궁, 덕수궁의 역사) (덕수궁) (#0623 - 중화전 중화문,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 석조전 石造殿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다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건립 연도는 1897년, 완공 연도는 1910년 이다 대한제국 건국 연도에 짓기 시작해서 대한제국이 망한 해에 완공된 비운의 궁전이다 1909년( 융희 3년)에 완공했고 1910년 12월 1일에 공식적으로 낙성했다 그러나 약 3달 전인 8월 29일에 이미 나라가 망했다 이태왕으로 강등당한 고종은 석조전에 거주하지 않았다 단지 귀빈 접대 나 만찬 장소로 사용했다 침실로 사용한 것은 이왕세자로 전락한 의민태자 (영친왕) 이었다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그는 간간히 조선에 올 때마다 여기서 지냈다 1922년에는 아내 이방자와 아기였던 장남 이진가 함께 와서 머물렀는데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이진이 갑자기 열이 오른 끝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고 1933년에 일제가 덕수궁을 공원화하면서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사용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1947년까지 미 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6 25때는 북한군이 덕수궁으로 숨어들어 미군이 덕수궁을 포격해야할 상황이었으나 당시 미군 포병장교였던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는 "한국의 문화유산인 덕수궁을 파괴하는 것은 양심에 걸린다"라고 고민하던 끝에 북한군이 덕수궁에서 빠져나가 을지로로 향할 때 포격을 개시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해밀턴에게 정식으로 감사패를 전달했다 2009년 문화재청에서 석조전을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진행하여 2014년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모든 기둥머리는 양 끝이 아래로 회오리 치는 이오니아 양식 (Ionic order)이다 건물 정면과 좌, 우면 가운데 앞에 시원하게 뻗은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을 받친 모습으로 현관 구성했다 이런 현관을 포티코(portico)라고 한다 석조전 포티코에 세운 기둥은 줄지어섰다(列)하여 열주(列柱)라고 한다 석조전 건립에 든 돈은 약 300만 원으로, 현재 가치 약 2500억원 이었다고 한다 ● 석조전 서관 石造殿 西館 1936년 8월 기공하여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ㅡㅡㅡㅡㅡ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