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이슬/ "노랫말 속 '묘지'는 민주항쟁으로 죽어간 이들을 '태양'은 정권교체 새 시대를 뜻하는 듯 했다"
▶이 노래를 듣고 싶으시다면 • 양희은 - 아침이슬 (1971) [1]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와 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969년도 입학 동기입니다. 김민기는 회화과 저는 응용미술과로 학과는 달랐지만 당시 캠퍼스 교정에서 김민기와 양희은이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양희은이 종로2가 YMCA 강당에서 리사이틀을 한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는데 [2]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달랑 놓인 의자 한 개 뿐이었습니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통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양희은은 청소년 시절부터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김민기였다고 합니다. [3] '아침이슬'은 1971년 김민기가 작사ㆍ작곡한 대표적인 대한민국 민중가요입니다. 김민기가 1971년 발표했던 제1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동일한 곡을 김민기가 편곡해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이 대중들에게는 더 유명합니다. 이 곡이 발표된 지도 벌써 52년이나 되었습니다. [4] '아침이슬'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정부 긴급 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으로 선정되어 더 유명해 졌습니다. 긴급 조치 9호는 약 2000여 곡의 노래들을 사회 통념 위반과 근로 풍토 저하 따위의 이유로 금지곡으로 선정했는데, 유일하게 아침 이슬만큼은 금지곡 선정 근거가 없었다고 합니다. [5] 이후 세간에 알려진 아침 이슬의 금지곡 선정 이유는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가 불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불길하게 묘지 위에 떠오르느냐?" 그것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1971년에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어서 아이러니컬했습니다. [6]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서 '묘지'는 당시 민주 항쟁으로 죽어간 이들을 뜻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태양은 새로운 아침ㆍ새 시대ㆍ새 희망을 뜻한다고 억지로 엮어 볼 수는 있었겠으나, 군사 독재 시대 특유의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억지였던 것입니다. [7] 보통 사형수들의 형이 집행되었을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표현합니다. 그 때문에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제목과 또 일반 노래 가사에서는 사용되는 예가 극히 드문 '묘지'라는 단어를 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선정위원들이 불순한 의도로 곡을 만들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8] 그리고 가사가 추상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억압과 해방의 뉘앙스가 느껴지고, 선율도 거룩하고 엄숙하기에 폭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유신 집권층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공포를 느껴 별다른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고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9] 이후 반정부 집회에서의 대표적인 제창곡이 되었으며 굳이 해석을 붙인다면 독재의 탄압 아래 신음하는 민중이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해석이 됩니다. 실제로 집회에 참석한 군중들 사이에서 '아침 이슬'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무언가 처연하고 장중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10] 대표적으로 발표 후 16년이 지난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신촌 로터리 부근에 운집한 100만 명의 군중들이 유일하게 다 같이 아는 노래가 애국가와 아침 이슬밖에 없었다고 할 만큼 이미 대중적인 민중가요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11] 당시 군중들의 연령대가 10대 중고등학생들부터 40대 장년층들까지 다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 같이 아는 노래가 별로 없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촌 로터리부터 시청 앞까지 늘어선 100만 명의 군중이 동시에 '아침 이슬'을 제창할 수는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돌림노래가 되었는데, 그 광경이 아주 대단한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12]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북한의 중학생들과 대학생들이 1990년대에 전국적으로 널리 부르던 곡이라고 합니다. 주성하 기자가 북한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시기에도 이 노래를 훈련가로 제창했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금지곡이었지만 북한에서는 상당히 대중적인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13] 그렇지만 유행했던 시기가 하필 고난의 행군 시기여서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유행하자 북한 지도부에서 불안감을 느껴 1998년부터는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아침 이슬'을 부르다 당국에 걸리면 강제노동 형에 처해진다고 합니다. [14]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