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고갯길 - 김상진 - 1972

도라지 고갯길 - 김상진 - 1972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하늘의 천 / 예이츠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에 왜가리 두 마리가 서 있다 논바닥의 초록 말 줄임표에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다 왜가리들이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으려고 성큼성큼 뛰어가다가 어린 벼 포기를 밟은 것이다 진흙 수렁에 빠진 벼 이파리가 연 초록의 가녀린 힘을 모으느라 봄 논의 물살은 파르라니 떨리고 있다 시인의 서랍 / 이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