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순옹주 홍문/ 백송공원, 같은 장소에 있고 다 추사와 관련이 있다./(상세 내용은 설명 "더보기"란을 참조하세요)/#shorts, #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612화순옹주 홍문/ 백송공원, 같은 장소에 있고 다 추사와 관련이 있다 화순옹주는 추사의 증조모로 왕실의 유일한 열녀이고 여기 백송은 추사가 1809년 연경서 씨앗을 가져다 심었다 함 /#shorts, #화순옹주홍문과백송공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0 업로드/12 15 0 공개/12 21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 화순옹주(和順翁主) 홍문 ㅡ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45호)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과 결혼했다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옹주가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불효라 하며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화순옹주는 조선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이다 ㅡㅡ 백송이야기 ㅡㅡ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 급)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예산군 용궁리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 5m 가슴높이들레 4 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 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