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사물의 일터신학 #8.]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사물의 일터신학 #8.]

#세미크리스천 #여로보암 #북이스라엘왕국 #말씀에순종 #금송아지 #벧엘 #단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융합’ 혹은 ‘퓨전’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섞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우리 시대의 한 문화 현상이다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 지식의 통합도 시도한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가볍게 연주한 ‘세미클래식’을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클래식으로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클래식과 팝, 국악 등의 결합인 크로스오버가 장르로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착안해 우리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을 ‘세미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세운 금송아지를 일터신학의 관점으로 보면 그가 섞어놓은 일이 과연 바람직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1 건축 현장 관리자, 북이스라엘을 건국하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 할당된 건축 공사 일을 시작하여 솔로몬 왕의 신임을 받았는데, 과부의 아들이었다(왕상 11:27-28) 감독관으로 승진한 여로보암을 아히야 선지자가 길에서 만났다 자기의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열 조각을 주었다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국 중에서 열 지파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언이었다(왕상 11:29-32)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등극한 로호보암 왕 때에 쿠데타를 일으켜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왕궁 건축과 건설 사업들을 전개해 나갔는데 어느 날 복잡한 문제에 봉착했다 율법대로 절기 때 남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려는 백성이 있었는데 그들이 성전 때문에 유다로 영영 가버리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는 자신이 당할 쿠데타를 늘 걱정한다 하지만 여로보암이 한 가지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히야 선지자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다윗처럼 순종하면 다윗을 위해 세운 것 같은 견고한 집을 주고 이스라엘을 그에게 주겠다고 예언했다(왕상 11:38) 이 중요한 약속을 잊은 여로보암은 논의와 숙고를 거쳐 결단했다 아마도 북이스라엘의 《데일리 이스라엘》의 1면 머리기사 헤드라인이 이렇게 나왔을 것 같다 “여로보암 왕, 남쪽과 독립된 주체적 종교 시스템 확정” 심층보도를 이런 후속기사로 다루었을 것이다 첫째, 금송아지 둘을 벧엘과 단에 설치해 제사하게 한다 둘째, 종교인을 새롭게 수급하고 토착 절기 의식을 구축한다 성전을 짓기는 힘들고 민심의 이반은 확실히 막아야 했기에, 고민하던 여로보암은 결국 ‘금송아지’를 선택했다 2 교묘한 영특함으로 정열을 쏟아 부은 두 금송아지!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 과거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산 아래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렇게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하) 똑 같지 않은가!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허술하지 않았다 철저히 고증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애굽인들이 섬기던 ‘아피스’(Apis)나 ‘므네비스’(Mnevis) 신은 황소의 형상이었다 고센 땅과 가까운 나일강 하구에도 황소를 섬기는 종파들이 있었다 여로보암은 ‘애굽 유학파’이기도 했다 과거에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이 죽이려고 위협할 때 애굽으로 망명해 애굽 왕 시삭에게 예우를 받으며 지냈던 적이 있다(왕상 11:40) 특히 소의 형상은 성전에서 제사 드릴 때도 친숙했다 솔로몬의 성전에 놋으로 직경이 4 5미터에 높이가 2 25미터인 큰 대접(놋바다)을 만들 때 받침대가 바로 소 열두 마리였다 머리를 밖으로 향하게 해서 동서남북 각 세 마리씩 총 열두 마리의 소 형상이 놋대접을 받치도록 했다(왕상 7:23-25) 여로보암 왕은 연구도 하고 자문도 받아 근거와 단서를 발견하여 무언가 만들어내는 지도자였다 무식하지도 않았고 고집불통도 아니었다 금송아지를 두 개 만든 것도 성전 순례의 노동력을 줄이려는 실용적 의도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남쪽의 벧엘에 설치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가다가 잠을 자면서, 꿈에 하늘과 연결된 사다리를 본 곳이다(창 28:10-22) 또 하나의 금송아지는 북쪽에 있던 단에 설치했다 일찍이 사사시대에 단 지파가 은으로 만든 신상을 두었던 곳이다 여로보암 왕은 당시에 성소가 실로에 있을 때도 이 신상을 단에 두고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했던 과거의 역사를 참고했다(삿 18:27-31) 또한 레위인이 다 유다로 가서 레위인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고 절기도 율법에 기록된 7월 15일이 아니라 8월 15일에 지키게 했다 북 이스라엘 지역은 남 유다와 달리, 곡식의 수확기가 한 달 정도 늦었긴 해도 이 모든 것이 다 율법에 어긋났다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정했다 3 말씀을 벗어나면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애써도 안 된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참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그 깊은 생각은 무의미했다 왜 그런가? 말씀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초를 놓쳤기에 결국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을 지었다 말씀을 떠나 잘못된 길로 가는 여로보암을 하나님이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여로보암 왕에게 보내셨다 유다 왕국에서 벧엘까지 간 하나님의 선지자는 벧엘의 제단에서 분향하는 왕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경고와 재앙의 말씀을 외쳤다(왕상 13:2-3) 그러자 왕이 선지자를 잡으라고 손을 뻗쳤다 그때 왕의 손이 말라버려 꼼짝 못하게 되었다 이때 왕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왕상 13:6)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을 파멸의 길로 그릇가게 하던 여로보암은 자신의 육신에 아픔이 오니 즉각 그 고통을 호소했다 여로보암 왕에게 예언했던 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 예언한 후 왕이 대접하려고 하는 것도 사양하고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선지자에게 시킨 일이었다 가고 오는 길에 음식과 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유다 땅으로 돌아가던 중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자기에게도 하나님의 예언이 임했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데려갔다 그리고 음식을 주어 먹게 했는데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치명적 실수였다 악한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되었다 결국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고 말았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바로 여로보암 왕의 모습이었다 그 선지자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으나 계속 잘 지키지는 못했다 절반쯤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사람의 최후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 선지자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로보암이 깨닫기를 원하셨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택하여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지만 결국 자신의 방법대로 행동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심사숙고했고 절대 경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그의 죄가 용납되지는 않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성공이 의미 없다는 점을 무시했다 여로보암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한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어렵고 힘든 일터환경,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세미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절반 그리스도인’은 두 사람이 모인다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구원 받은 우리는 ‘리얼 크리스천’이어야 한다 말씀에 기초하여 인생의 토대를 세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 이 영상 자료는 『사물의 일터신학』 (원용일 지음, 브니엘 펴냄)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책읽어주기 형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영상에 사용된 BGM은 ‘크리스찬 BGM’ 채널의 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 ( 글/내레이션 : 원용일 목사(직장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