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2. 예안향교통문 / 안동MBC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2. 예안향교통문 / 안동MBC

2019/01/14 15:42:14 작성자 : 이호영 ◀ANC▶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기획보도 "민국이 있기까지 그 기록을 살피다" 시간입니다. 영남의 유생들은 구한말 당시 친일 내각인 김홍집 정부가 강행하려던 단발령 등 복제개혁에 강하게 반발하고 을미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 을미의병은 안동 예안 향교의 통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앵커리포트로 전해드립니다. ◀END▶ 을미년 1895년 12월 예안향교에서 영남 각 지역의 서원과 향교 등지로 보낸 예안향교통문은 을미변복령에 대한 개탄과 명성왕후 시해 사건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군현 각지에서 충성과 의기를 떨칠 것을 촉구합니다. 이 예안통문을 시작으로 '삼계통문'과 '청경통문','호계통문'이 발의됐고 특히 통문에 따라 안동유림들은 1896년에 봉정사에 모여 면회를 열고 안동부에 들어가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했습니다. 1896년 1월 20일 봉화 유곡의 권세연이 안동의병장에 추대되면서 의병활동은 1896년 9월까지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INT▶김형수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예안향교의 통문을 바탕으로 해서 경북지역의 대다수 군현에서 의병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의병들은 1896년 상주 태봉 전투라고 하는 대규모의 전투를 일본군과 치름으로써 경상도 전역에 반일투쟁의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C/G)의병대장 권세연은 안동창의격문에서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지적하고 의병들에게 인간의 바른 도리로 나아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각 군현 향교를 중심으로 반포됐던 의병격문통문 가운데 하나인 안동창의격문은 진주의진격문과 관동창의사 민용호 격문 등과 더불어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INT▶임노직 자료부장/한국국학진흥원 "'손발은 자를지언정 두발은 자를 수가 없다'라고 분개한 영남의 유생들은 당시 친일 내각인 김홍집 정부가 강행하려는 단발령을 완강하게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병을 일으켜서 정부시책에 대항하였던 것입니다." 을미의병에 참여한 향산 이만도 선생은 훗날 나라가 망하자 단식 24일 만에 순국하는 등 위정척사계열의 유생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앵커리포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