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차성봉 애단 부제)2023년 3월 19일 사순4주일 감사성찬례 [성공회대학로교회]
1독서: 사무상 16:1-13 2독서: 에페 5:8-14 시편: 23편 복음서: 요한 9:1-41 성서이야기: 우리의 눈을 가린 어둠 by 차성봉 애단 부 영국에서는, 사순절의 네 번째 주일을 ‘마더링 선데이’ 라고 부르며 지키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이 날은 원래, 자신이 세례성사를 받은 모교회를 방문하는 날이었습니다 수세기 전 영국의 어린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일하러 집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시대는 너무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들이 일년에 딱 한번 고향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마더링 주일’ 이었습니다 그날에는, 그 아이들이, 자신이 유아세례를 받았던 어머니의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로 가는 도중에 시골길을 걸으며 야생화나 제비꽃을 따서 교회에 가져가거나, 어머니께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로 왕족과 영웅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를 배웁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는, 이렇게 고된 삶을 살아가며 인류의 역사를 이루어온 이 작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역사에 잘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렸을까요? 오늘의 복음서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여러 사람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사람을 보고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문화와 관습대로, 장애와 질병을 죄의 결과라고 이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 어떻게 보시나요? 그저 한 대상을 연구대상이나 토론주제로 삼은 듯한 이 냉냉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런 질문을 예수님의 제자가 하다니, 그가 정말 제자가 맞는지 궁금해집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력이 회복된 사람을 본 동네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누군가가 “그 사람, 거지였지?” 하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어떤 사람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은 대상이었다는 말이죠 시력이 회복된 그에게, 아무도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치료를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소경을 치유한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 것은, 예수님의 죄를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대답하지 않는 소경을 바리새인에게 데려간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리사이파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한 인간이 회복되는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 규정을 어긴 죄인만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눈을 뜨면서도 사건의 진실한 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모두 어둠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 어둠은 그들이 스스로 구축하고 의지한 차별적인 사회 질서와 종교적 인습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그가 다시 그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복은 하느님의 축복이요, 죄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빛이 다가올 때 어둠은 더욱 맹렬히 한곳으로 모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 질서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질서와 충돌된, 또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을 회당 밖으로 내쫓은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 무의미하고 힘없는 존재들, 작고 약한 존재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그들을 발견하기를, 그들을 회복시켜 세상에 드러내기를 요청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찰의 질문입니다 내가 소홀히 여긴 것,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는 잘못된 사회 구조와 문화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내 눈을 가린 어둠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