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 2025년 1월 29일 /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 대전 노은동 성당 / 매일 강론
설 / 2025년 1월 29일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 대전 노은동 성당 / 매일 강론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원고 보기] https://cafe.daum.net/noeunsd1004/UuA... 민수 6,22-27; 야고4,13-15; 루카 12,35-40 찬미 예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설날’이 눈 ‘설’자를 써서 설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기상으로 12월 7일이 ‘대설’인데요, 작년 대설엔 눈이 안 왔는데, 혹시 설날을 대설로 착각하고 눈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제 아침에,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성당에 오셔서 함께 눈을 치워주셨는데요,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설날’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이, 어른들에게는 떡국이 떠오릅니다. 저희에게는 연도와 합동위령미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우리와, 당신 곁에 계신 우리 가족과 친지들에게 변함없이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는 기원입니다. 아이들이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주는데요, 설날에 세뱃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면 뭐가 되는지 아세요? 설‘거지’가 된다고 합니다. 설‘거지’가 되는 아이도 없어야겠지만, 설거지만 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도록, 모두 함께 일하고 함께 노시면 더욱 좋겠네요? 오늘 제1독서는 사제의 축복에 대한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독서 말씀을 유심히 보면, 하느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사제들에게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축복하면 복을 내리는 것은 당신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라 오늘 미사 끝에 이 말씀으로 장엄 강복을 드리게 되는데,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이름은 ‘야훼’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주님’으로 바꾸었지만, 축복의 핵심은 하느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것입니다. 세 가지 축복은 세 단어로 시작해서 다섯 단어, 일곱 단어로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축복은 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야훼께서 강복하시고 지켜주시리라.” 하느님의 강복의 결과가 ‘지켜주심’입니다. 하느님의 강복이 우리를 나쁜 영들과 온갖 악으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축복은 다섯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야훼께서 너에게 얼굴을 비춰주시고 은혜로우시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얼굴을 비춰주신다는 말은,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는 것이 우리에게 고통입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을 비춰주시면 그것이 곧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다른 말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세 번째 축복은 일곱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야훼께서 너에게 얼굴을 들어주시고 너에게 평화를 주시리라.” ‘얼굴을 들어주신다’는 표현은 ‘바라보시다’, ‘호의를 갖고 바라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얼굴을 들어주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평화입니다. ‘평화를 주시리라’가 모든 축복의 결론인데요, 이는 큰 어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시고(레위 26,6; 욥 21,9), 행복(신명 23,7; 잠언 3,2)과 건강(시편 38,4)과 우정(예레 20,10; 38,22)과 평안(1사무 16,4 이하, 2사무 18,28)의 은총을 주시리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제1독서의 축복은 여섯 개의 동사로 되어 있는데, “강복하시고, 지켜주시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로우시고, 얼굴을 들어주시고, 평화를 주시리라”입니다.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눌 때 이 말을 다 쓰면 좋은데, 너무 길으니까 요약해서 한 문장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뭘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면서 서로 이렇게 인사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행복하다”라는 단어가 두 차례 나오는데요,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렇게 두 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을 매우 단순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에서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하고, 하느님의 뜻을 내 뜻보다 앞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인 야고보서도 같은 맥락에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내 생명의 주인이, 또한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서로에게 그 복을 빌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복을 주로 사람들을 통해 주십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복이고, 내 앞뒤에 계신 형제자매님들이 복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복이고, 우리가 이 미사 중에 기억하는 우리 가족과 조상, 친지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신 귀한 통로가 되어 주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당신 곁에 계신 우리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강복하시고, 지켜 주시고,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로우시고,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평화를 베푸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이와 세상을 떠난 분들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이 미사 안에서 우리는 지금 그분들과 함께 있고,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평화 안에서 마침내 하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