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형제로서 알려준다는 것: 지레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본인이 하느님인 냥 굴지도 마십시오 – [2020년 9월 6일 연중 23주일 삼종훈화 중]
* 자유로운 퍼가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출처표시 없이 영상만 따로 추출하여 옮겨 나르는 건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형제로서 알려준다는 것: 지레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본인이 하느님인 냥 굴지도 마십시오 – [2020년 9월 6일 연중 23주일 삼종훈화 중]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 내 예수님의 네 번째 (대중) 설교에서 취해진 것으로서 '공동체' 혹은 '교회'에 관한 말씀으로 알려진 부분입니다 (아울러) 오늘 말씀 구절은 형제적 교정에 관한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존재에 관한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보도록 초대합니다 곧, 하나는 친교의 보존, 다시 말해 교회의 일치에 대한 공동체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개인적 양심에 관한 주의와 존중이 필요한 개인적인 측면입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실수한 형제를 바로잡아 주기 위한 (일종의) 회복의 가르침/회복적 교육학을 제안하시죠 실상 예수님의 가르침은 늘 회복의 가르침이셨으니까요 네, 그분께서는 언제나 회복시키고 구원하시는 법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복의 가르침은 세 단계로 나누어지죠 (이에 오늘도) 그분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마태 18, 15] 다시 말해 그의 잘못을 광장에서 떠벌리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형제적 교정의 목적은) 그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 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신중하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도 얼마나 이런 경험을 했었는지요 (그러니까) 누군가 와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저기, 실례지만 당신께서 이것을 잘못한 것 같은데요 당신은 이것을 조금 수정 하셔야만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에는 우리가 이에 대해 화가 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고마워하죠 사실 이것은 형제적이고 친교와 도움 그리고 회복의 행위이니까요 [중략]… 하지만 나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네, 잘못한) 형제자매에 대한 나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첫 번째 개입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 이런 경우 교정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전 여기서 손 떼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허나, 이러면 안 되죠 이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걸요 네,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다른 형제자매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은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태18, 16] 네, 이것은 모세 율법의 법 조항이기도 했습니다 (한데) 이 증인들은 얼핏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보이지만, 실은 거짓 고발자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시죠 곧, 두 증인도 고발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것이 그 첫 목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자, 당신과 나, 우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 지금, 그가 바보같이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말해주러 갑시다 하지만 우리, '형제로서' 그에게 가서 알려줍시다" 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회복의 자세/회복시키는 자세'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세 율법과는 달리 증인들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접근방식도 실패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모세 율법은 두 세 사람의 증언만으로도 단죄하기에 충분했는데 말이죠 실상 두 세 명의 형제적 사랑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그 형제자매가 완고한 고집불통일 수 있으니까요 (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우 그를 공동체 곧 교회에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어떤 상황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관여해야 할 때가 있는 거죠 다른 형제자매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네, 한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보다 큰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한데 때때로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분명 너무 경멸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그 형제자매를 하느님의 손에 맡기라고 초대하시는 말씀이죠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이 모든 형제들이 합친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네, 우리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보죠 우리가 어떤 형제자매의 잘못이나 결함 혹은 실수를 발견했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첫 번째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가서 이를 알리고 시시덕거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시덕거림/뒷담화는 공동체의 마음을 닫고, 교회의 일치를 닫아버리죠 (그러고 보면) 가장 특성화된 뒷담화꾼은 바로 악마입니다 그는 항상 다른 이들에 대해 나쁜 말만 하고 다니는데, 이는 그가, 교회의 일치를 깨고 형제들을 소외시키며 공동체를 이루지 않으려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부탁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야지, 뒷담화는 안 됩니다 (실상) 시시덕거리는 뒷담화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질병입니다! 그럼요 더 끔찍하죠 이에 우리 노력합시다 절대로 시시덕거리지 않기로 말입니다 (따라서) 세리와 다른 민족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사랑이 당시 상식으로는 추문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의 세 번째 제안은) 여지없는 단죄의 차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때때로 우리 인간의 시도는 실패할 수 있으며, 오직 하느님 앞에서만 우리는 한 형제를 자신의 양심과 제 행위에 대한 책임 앞에 둘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뜻대로 잘 안 풀린다면, 그 잘못을 저지른 형제자매를 위해 침묵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시시덕거리며 뒷담화해서는 한 됩니다 (하여)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형제적 조언과 교정을 해줌에 있어 건강한 습관을 들이도록 도와 주시길 빕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서 항상 새로운 형제적 관계가 맺어지고, (이러한 관계성이) 상호 용서와 무엇보다 하느님 자비라는 무적의 권능에 기반을 둘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들 ‘형제적 사랑’으로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들은 한다 그런데…정작 당사자도 없는 곳에서 다른 이들과만 유독 그러고 있다면, 그것이 정말 ‘형제적 사랑’에 의한 형제적 교정일까? 더욱이 끝까지 자신의 말과 생각에 따르지 않는다고 종국에는 저주에 가까운 독설마저 내보이는 그 모습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한데, 그런 모습이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반응에 본인을 ‘이해 받지 못하는 예언자’인 것처럼 더 포장이라도 할라치면… 그야말로 그 분이야말로 더 기도가 필요한 지경은 아닌지… 말이 나온 김에 이런 분들의 반복 상용구인 ‘그동안 얼마나 상처받았길래’ 라는 말로 넘겨서도 안 될 일이지 싶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다른 이들에게 주는 상처의 핑계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뜻대로 잘 안 풀린다면, 그 잘못을 저지른 형제자매를 위해 침묵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시시덕거리며 뒷담화해서는 한 됩니다 시시덕거리는 뒷담화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질병입니다 ” 영상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