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N뉴스] '76주년 광복절 2' 임제종 운동 만해스님

[BTN뉴스] '76주년 광복절 2' 임제종 운동 만해스님

[앵커] 76주년 광복절 특집 두 번째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혁명가였던 만해스님입니다 임제종 운동을 일으켰던 만해스님은 광복을 한 해 앞두고 원적에 들었습니다 최준호 기자입니다 ------------------------------------- [리포트] 불교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혁명가이자, 민족의 한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스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어린 나이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백담사와 인연이 닿아 출가했습니다 백담사에서 공부·수행하며 넓어진 지적 세계와 확고해진 개혁 사상은 이후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국권 피탈 후 원종 종정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예속적 체맹을 맺은 것이 밝혀지자, 만해스님은 여러 스님들과 함께 임제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불교의 자주성과 유구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일으켰던 임제종 운동은 수많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사찰령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스님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들어가는 공약 3장을 작성하고 대한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전보삼 / 만해기념관장(전화인터뷰) (원래 선언서는 육당(최남선)이 썼잖아요 그 내용에 대해서 스님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공약 3장을 추가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것은 선언서에 있어서 눈동자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독립 선언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스님은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 경제의 육성, 민립대학 건립 운동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또한 대한불교청년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사찰령 폐지를 건의하는 등 대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도 진력했습니다 1927년 항일단체 신간회가 창설될 때 발기인으로 참석하며 이념을 가리지 않는 민족의 단결도 이끌었습니다 전보삼 / 만해기념관장(전화인터뷰) (우리가 실력을 쌓고 능력을 길러야 한다 해서 자립역행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여러 활동을 하시고 관련된 글들을 저술로 나타내기도 했죠 신교육운동에도 많은 매진을 하시고, 통신강의록을 통해서 통신대학 같은 것도 실천적으로 옮기셨습니다 ) 스님의 항일에 대한 의지는 입적 때까지 꺾이지 않았습니다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을 지을 때에도 총독부를 바라보는 남향을 거부하고 동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민족의 자주 독립과 조국의 광복을 꿈에 그리던 스님은 1944년 광복을 한 해 앞두고 원적에 들었습니다 BTN 뉴스 최준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