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1000곡 #김복만교수 0484] 청춘 (원곡 : 산울림/김창완) #가사첨부

[#도전1000곡 #김복만교수 0484] 청춘 (원곡 : 산울림/김창완) #가사첨부

《 '산울림' - 3인조 형제 록 밴드 》 형제들로 이루어진 3인조 록 밴드이다 1977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여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선풍을 일으킨 이래 1991년까지 12종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일정한 휴지기를 가진 뒤 13집 앨범을 1997년에 발표하면서 다시 컴백했다 삼형제의 맏형 김창완(1954∼ : 기타, 보컬), 둘째 김창훈(1956∼ : 베이스 기타, 보컬), 막내 김창익(1957∼2008: 드럼)은 집에서 음악으로 ‘놀이’를 자주하곤 했다 그들은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무이(無異)'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이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산울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1977년 서라벌레코드의 '산울림 1집' 앨범에 수록된 '아니 벌써'가 큰 히트를 기록한 이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1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2집) 등이 연속 히트를 했다 이후 김창훈과 김창익의 군 입대로 휴지기를 가졌지만, 1980년부터 1984년 사이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빨간 풍선'(이상 6집), '가지 마오', '청춘'(이상 7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회상'(이상 8집), '너의 의미'(10집)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산울림'은 1975년 12월의 대마초 파동으로 대다수의 록 밴드들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을 때 혜성처럼 등장하여 록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했다 그들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존 록 밴드와는 달리 음반과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했다 '산울림'은 2006년에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을 하고 14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 2008년에 막내 김창익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그 후 둘째 김창훈은 취직을 하였고, 가요계에 혼자 남게 된 맏형 김창완은 ‘김창완 밴드’를 결성하여 현재까지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당대에는 '산울림'의 높은 창의성에 불구하고 연주력이 낮다는 이유로 과소평가 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인디’계열의 음악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추종을 받고 있다 '산울림'은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필두로 1978년에 TBC 가요대상 중창 부문, 1981년에는 KBS 가요대상 중창 부문을 수상하였다 '산울림'은 1990년대의 록 평론가들에 의해 '신중현', '들국화'와 더불어 한국 록 역사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 노래 '청춘'은 1981년에 발표된 '산울림'의 제7집에 수록되어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 또 2015년에는 '김필'의 리메이크 버전이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로 사용되는 등 현재까지 세대를 뛰어 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청춘 지고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원곡 : 산울림, 제7집, 1981 자료 :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 사진 : Pixabay Image #노래부르기_도전1000곡 #동호ㆍ김복만교수 #도전천곡 #산울림 #청춘 #김창완 #응답하라1988 #김필 #정동원 #7080추억의노래 #OST 《 페이스북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