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맹세는 왜 이렇게 위험한가?(삿 21:13-25)
1 이스라엘은 경솔한 맹세를 하여 내전을 파국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이 되라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고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율법으로 친히 통치하시는 민족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열방의 빛이 되기는커녕, 자기 나라 내부의 문제도 해결 못하고 내전으로 한 지파를 거의 멸절시킨 파국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남은 11지파의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희생 끝에 내전을 해결하고도 또 베냐민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는 경솔한 맹세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실로의 여자들을 희생했습니다 2 왜 내전을 파국으로 몰고 갔습니까? 인간의 상대적 정의에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기브아를 징계하기로 하고, 베냐민 지파에게 기브아 불량배들을 넘기라고 요청했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불량배만 제거하면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베냐민 지파는 자기네 문제이니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두 개의 정의가 부딪쳤습니다 11지파의 정의냐? 베냐민의 정의냐? 인간의 정의는 이렇게 상대적입니다 3 왜 인간의 상대적 정의에 호소했을까요? 하나님의 절대적 정의, 은혜로운 정의, 불의한 정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11지파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모여, 베냐민 지파 기브아 불량배의 문제를 민족 전체의 문제로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런 망령된 일이 일어났다고 크게 각성하고 통곡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연패 당한 11지파는 세 번째, 벧엘에서 실로의 언약궤 앞에 모였습니다 울며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언약궤 앞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정확히 물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삿 20:28) 안 싸울 수 있으면 안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싸워야 된다는 그들의 정의감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정의를 물은 것이지요 그제서야 주님은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사사기 20:28절입니다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삿 20:28) 4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에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넘어, 결국 은혜를 베푸십니다 죄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점차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동물 희생 제사 제도를 만드시고 율법을 지키는 삶으로 다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가 함께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만났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해 계속 동물을 희생시킬 수 없을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동물 대신 희생당하셨습니다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만나, 결국 교회에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나 이루어질 사랑의 삶을 지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