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7일 은총의 숲 새벽묵상

2022년 12월 27일 은총의 숲 새벽묵상

감사 인생 (살전5:16-18)“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탈무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몸은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랍니다. 불평하면 ➀혈액순환이 방해받고, ➁맥박이 급하게 뛰며 ➂위장 운동을 둔화시켜 소화불량을 가져온답니다. 그러므로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시게 되자 큰 소리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말씀하시지요.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이들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집으로 가다가 깨끗이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열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예수님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감사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침 받고 돌아온 환자에게 그냥 집으로 가지 왜 돌아왔느냐?고 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주님은 그냥 돌아간 9명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병 고침을 받고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 가운데도 10%의 사람만 감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10%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90%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감사라는 단어는 영어로 thank입니다. 생각하다는 말은 think입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감사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다, 기억하다, 감사하다는 말은 모두 형제와 같은 단어들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삶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선물들을 기억할 때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돌아온 나병환자 한 명이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큰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하면 더 큰 감사가 따라옵니다. 감사하면 더 큰 은혜와 복이 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이소연씨가 어느 강연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지구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구가 그렇게 감사한 곳인 줄 알지 못하였거든요. 우주에 나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지구에서 살만한 자격이나 요건에 대해 따져본 적이 없었지요. 오히려 사는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우주 생활 훈련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숨쉬고, 밥먹고, 화장실 가고, 걸어다니고, 일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구나! 감사한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이소연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보고, 만지고, 숨쉬고, 잠자고, 일어나는 이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나는 고침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9명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안소니 드 멜로가 쓴 [종교박람회] 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 불평했습니다. “선생님! 삶이 너무 힘듭니다. 방 하나에 우리 9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가 불평하는 사람에게 대답했습니다. “염소를 방 안에 들여놓고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보게.” 의아해 하는 그 사람에게 랍비는 말했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하고 일주일 후에 오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전보다 더욱 정신 나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염소가 너무 지저분합니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그 염소를 내보내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게.”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그 사람이 랍비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빛이 났습니다. “선생님! 삶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매 순간이 즐겁습니다. 염소가 없으니 우리 9명 정말 행복합니다.” 상황은 처음과 똑같습니다. 바뀐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인식이 바뀌자 축복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일까요? 감사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헌신하고 희생하는 신앙을 매우 가치 있고, 큰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헌신하는 신앙보다 더 큰 신앙은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왜 그럴까요? 본문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전략을 잘 알고 계시지요?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보도록 속삭입니다. 그 속삭임에 넘어가 불평하면 불평거리가 더 생기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 감사할 게 더 많아지고 더 큰 축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 나병 환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축복하셨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비하면 치유의 은혜는 작은 복에 불과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높은 이자를 쳐서 축복해 주십니다. 성경이 일러주는 믿음의 법칙이 있습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축복의 문도 열리지만, 감사의 문이 닫히면 축복의 문도 닫힌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지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2022년도 5일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고 작정해 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해 보십시오. 그렇게 2022년도를 마감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2023년도를 은혜와 축복으로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감사는 기분이 아닙니다. 정서적 반응도 아닙니다. 감사는 생각하고, 기억하는 인식과 의지입니다. 감사는 믿음으로 결단하는 은혜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지난 한 해 동안 베푸신 선물들을 기억하고 이를 감사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