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古朝鮮) 문자 찾기 대장정(3)---요(堯)의 도사유적과 다른 차원의 적봉 청동유물의 고조선문자와 천자(天子)문화---이찬구박사의 고문자(古文字) 탐구

고조선(古朝鮮) 문자 찾기 대장정(3)---요(堯)의 도사유적과 다른 차원의 적봉 청동유물의 고조선문자와 천자(天子)문화---이찬구박사의 고문자(古文字) 탐구

이번 연구는 殷周 갑골문과 금문에서 사라진 천자의 예제문화의 본의를 『예기』, 『주례』와 『이아』(곽박 注)를 통해 되찾았다는 점과 요서 적봉 일대에 거주했던 고조선 주민들이 문자를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후에 한자가 유입되었다는 열패적(劣敗的) 식민사관은 부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예제문화와 함께 문자의 사용은 도시의 출현, 청동기 발명 등이 4대 문명의 지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이찬구 논문에서) 적봉 일대의 청동기 문명, 북방청동기일까 고조선문명일까? 적봉 두패자에서 나온 청동시루에 새겨진 두 글자는 '저'와 '용'으로 고석된다. 중국은 산서성 임분시 도사유적에서 나온 '문' '요(읍)'를 요문명, 한자의 기원이라며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도사유적은 신석기 후기 유적이며, 도문(匋文)이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적봉 일대의 하가점하층문화, 그리고 두 글자는 도사유적보다 발전된 문명이다. 하가점하층문화를 중국에서는 '북방 청동기'라며 그 소속 정치체를 밝히지 않는다. 저와 용을 고석하면 '천자 문화'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즉 하가점 하층문화는 천자국이었던 '고조선문명'일 것이다. 이 문화를 간접적으로 고조선문명으로 풀이한 윤내현, 신용하와 직접적으로 '천자 조선국'이라 표현한 윤치도는 현재 역사학계에서 '유사역사학'으로 매도 당하고 있다. 고조선문명,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해 한국의 역사학계는 언제까지 침묵할 수 있을까? 고조선 문자 발견 기념 특강 3번째 영상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영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