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병시절 180 - 첫 휴가 2- 눈물의 휴가준비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소양호, 군대생활, 군대이야기, 군복무담,)
나의 일병시절 180 첫 휴가 2 눈물의 휴가 준비 1981년 12월 11일 금요일 이날 아침에 대항군훈련을 마치고 복귀하여 대충 목욕을 하고 우리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점심도 식관으로 타다가 내무반에서 나눠 먹고 또 그대로 잠을 잤습니다 정말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건드리며 깨우는 느낌에 눈을 떴습니다 어렴풋이 바라보니 중대본부의 김OO상병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졸립고 힘들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빛으로만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나를 보며 말하더군요 “야! 윤태상 너 내일 휴가 출발해야 한단다 빨리 휴가 준비해라 ” 잠에 취해있던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정신이 돌아오면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지만 나는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제 막 훈련에서 돌아왔는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온 몸이 쑤시고 아파 운신하기도 힘들고 발바닥은 물집 잡혀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데 어떻게 휴가를 간단 말인가? 정말 휴가고 뭐고 간에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자고 싶었습니다 아니 하루 이틀 시간을 줘서 걸음이라도 제대로 걸을 때 휴가를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김상병이 돌아간 후에 침상에 걸터앉아 생각하니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내일 휴가를 간다고 해도 당장 입고 갈 옷도 없었습니다 동정복과 방상을 입고 가야 할 텐데 그동안 훈련으로 물자분류 하느라 모든 옷들을 따블백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온통 구겨져서 그대로는 입을 수 없었습니다 휴가나 면회 때 입을 소대 공용 일계장 피복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림질을 해야 하는데 나 같은 졸병이 어떻게 하며, 피곤에 겨워 잠들어 있는 소대원들에게 어떻게 부탁한단 말인가? 따블백에서 옷을 꺼내 놓고 보니 더욱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침상에서 부스럭 거리며 오가자 분대장 장하사가 눈을 뜨더니 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야! 너 뭐하냐? 잠은 안자고?” “저 내일 휴가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옷을 꺼내보고 있습니다 ” “뭐? 휴가?” 장하사 역시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더니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그로서도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두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는 매 한가지였던 것입니다 본래 소대원이 첫 휴가를 떠나게 되면 그 모든 준비는 소대 고참들이 모두 해주었습니다 늘 고참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하는 졸병 입장에서 자기 휴가준비를 스스로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첫 휴가만큼은 고참들이 챙겨주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를 보면 고참들은 군복을 다림질하여 각을 칼 같이 세워주고, 우리가 직접 실로 꿰매었던 명찰을 9초소 너머 현대상회에 가서 미싱으로 제대로 박아다 줬습니다 군화도 고참들이 닦아주고 이발도 해주는 등 모든 준비를 해서 첫 휴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그동안 내가 봐온 우리 소대의 전례였습니다 평소 저승사자 같이 무섭던 고참들이 대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참들의 배려도 평상시 이야기이지 오늘처럼 힘든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도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분대장과 내가 나누는 대화 소리에 잠을 깬 사람은 내 사수인 최상병이었습니다 그 역시 나와 분대장 이야기를 듣더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옷을 입더니 내 동정복과 방상을 집어 들고는 내무반을 나갔습니다 마음 좋고 과묵한 그가 현대상회에 내 명찰을 달러 가는 줄 알았지만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들의 움직임에 하나둘 소대원들이 일어나고 그들 역시 내 휴가 소식을 듣더니 몇몇 고참들이 나서서 휴가준비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포분대 김OO상병은 다리미를 빌리러 다른 소대를 다녀오고 양OO상병은 내 군화를 닦아주었습니다 연대 간부이발소에 파견근무 할 정도로 솜씨 좋은 서OO상병은 내 이발을 해주었습니다 최일병이 내 동정복과 방상을 수선해 오자 다리미로 각을 세워 다림질을 시작했습니다 군복 다림질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줄을 잡아야 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팔에도 3개의 줄을 잡았고 등에도 가로줄 하나와 세로줄 3개를 잡았습니다 동정복 상하와 방상 등을 각이 서도록 다림질하기 위해서는 한참 동안 실랑이해야 했습니다 나는 그런 고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또 눈물이 나오도록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고참들에게 서운하고 미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내 휴가준비를 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마음의 앙금이 싹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 휴가 준비는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부산스럽게 움직였지만 정작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내일 내가 가지고 갈 물품을 챙겼습니다 그동안 휴가 때 무엇 무엇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챙길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군 생활을 기록한 노트와 사진 중 보안에 위배 될 것들은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해서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 몇 장과 그동안 모아 놓았던 화랑담배를 몇 갑 챙긴 것이 전부였습니다 화랑담배는 6 25때 참전하셨던 아버지께서 가끔 화랑담배 이야기를 하셨기에 기념으로 드리려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 옷을 일계장에 걸어놓고 나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그토록 꿈에 그리던 고향 땅 부모 형제에게로 1년 만에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아직 훈련 후유증이 회복되지 않아 절룩이며 고향에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