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여승,송수권,

94.여승,송수권,

#여승#송수권#박선미 이 시는 어린 시절의 구체적인 경험을 극적으로 구성하여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시적 화자의 내면을 다룬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서술자이자 관찰자가 되어서 여승에 얽힌 신비하고 황홀했던 추억의 한 토막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감기를 앓던 어느 봄날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승을 보고 황홀함과 아픔, 막막함이라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한 격정에 이끌려 여승을 따라 마을 어귀까지 간 시적 화자는 여승에게 마음을 들키고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아직도 여승과 만난 후 마을 어귀에서 헤어지기까지 짧은 순간에 펼쳐졌던 강렬하면서도 황홀했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하였다 이 시는 이러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아름답고 순수한 연애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이 시는 '포름한', '애지고', '흐들히' 등 남도 특유의 단아하고 풍부한 어감의 시어를 사용하여 시적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여승'의 모습은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로 '우는 듯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속세의 인연을 버리고 수도하는 처지라는 점에서 세속을 초월한 표정으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시적 화자는 여승 안에 남아 있는 세속적 고뇌를 읽어 내고 여승에게 다분히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에게 여승은 세속인이나 세속을 떠난 사람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뇌를 깨닫게 해 주었기에 더욱 강렬한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던 것이다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과 고통을 '그늘'과 '눈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고통을 인정하고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시는 화려한 수사 어구가 아닌 단순한 표현만으로도, 우리가 자칫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일상의 깨달음 -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 - 을 전해준 작품이라 하겠다 -여승-은 송수권 시의 출발점이자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 흐르기를 기도하며 / 시를' 쓰는 송수권 시작(詩作)의 원동력이라 여겨진다 '여승'이란 본래 속세를 떠나 사는 존재이다 속세의 인간과 어울릴 수 없는 깨끗하고 순결한 존재이며,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 ' 그리하여 '여승'은 속세의 인간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기보다 오히려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속세의 인간은 '여승'을 보며 정화의 욕망을 품기도 한다 속세의 인간과 '여승'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거리감만큼 그리움도 커지는데, 발 이 때문에 송수권은 '여승'을 보매 '애지고 막막하여'지는 것이다 여기서 '애지고'란 시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애-지다'에서의 순 우리말 '애'는 고어 속의 '창자'이거나 '타는 근심 속의 매우 큰 수고로움'을 의미할 것이다 이야말로 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은 박재삼 식의 '서러운 그리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에 대한 표현 '애지고'는 참으로 절묘하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여승)을 통해 본 송수권의 시세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