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귀주성1. 청암고진, 황과수 폭포, 갑수루 2010 . 7. 22
7 22(목) 인천 -중경 인천 공항에서 밤 8시 30분 출발하여 약 3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중경 강북 공항에 도착하였다 밤늦은 시각에 다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시내에 위치한 호텔에 여장을 푼다 7 23(금) 중경 -귀양(청암고진, 귀양박물관, 갑수루) 8시 호텔을 출발하여 10시 35분 발 국내선을 1시간 정도 비행하여 귀양(貴陽)에 도착하였다 예로부터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은 양(陽), 산의 북쪽과 물의 남쪽은 음(陰)이라 불렸는데 귀산(貴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이름 지어진 귀양은 윈구이고원(雲貴高原) 동반부에 속하는 귀주성의 중심 도시이다 석회암의 영향으로 검은 색을 띠기에 옛날부터 첸성(黔省검성)이라 불리는 귀주성은 하늘은 3일 이상 맑은 적이 없고(天無三日請), 땅은 3리 이상 평평한 곳이 없으며(地無三里平), 사람은 3푼의 돈도 없다(人無三分銀)는 척박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열대에 속하면서도 고원지대에 위치하기에 제 2의 춘성이라 불리는 귀양을 중심으로 서쪽의 아름다운 카르스트 지형과 동쪽의 소수 민족의 문화를 느끼기 위해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곧장 시내를 벗어나 구름을 안고 선 봉우리들을 감상하면서 시내에서 29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청암고진(靑岩古鎭)을 찾으니 12시 30분이었다 방어를 위한 군대 주둔 규모에 따라 진(鎭), 보(堡), 둔(屯) 등이 있는데 운남(雲南)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군사적 방어지와 상업지구의 역할을 해왔다는 청암고진은 푸른 돌을 사용했기에 청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성곽이나 도로의 돌에서는 그 색깔을 느낄 수는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강한 햇빛을 피해 북쪽에 위치한 북성문(北城門)에 들어서니 명, 청 시대의 건축물 사이로 화려한 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이형(趙以炯) 생가였다 조이형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홍정장원(紅頂狀元)이 된 사람이다 장원은 흰색 구슬이 달린 모자를 쓰지만 조이형이 장원 급제한 때는 황후 책봉이 있었던 해여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붉은 구슬을 달았던 것이다 생가 마당 계단 옆에는 우물이 2개가 있는데 형이 판 우물의 수면이 약간 높다고 한다 도로변 가게에는 돼지 족발과 진흙으로 둘러싸인 거지 닭을 많이 팔고 있었다 조이형이 어릴 적 돼지 족발을 즐겨 먹었기에 두뇌가 좋아져서 장원급제 할 수 있었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돼지 족발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남쪽 끝에 위치한 정광문(定廣門)으로 들어서자 충효나 정절, 장수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하얀 색의 돌로 만든 패방이 눈에 띠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구사팔묘오각일궁(九寺八廟五閣一宮)'과 '팔좌패방(八座牌坊)'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개의 패방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정광문 성채에 올라서니 망루와 포대가 보였는데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서양 세력이 들어오면서 받아들여진 천주교, 기독교와 더불어 옛날부터 자리 잡은 불교와 도교가 조화를 이루는 사교합일(四敎合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채를 내려와 먼저 교회를 찾았다 교회 안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 연습하는 신자가 있었는데 교회의 엄숙함은 느낄 수 없었다 길모퉁이를 돌아 영상사(迎祥寺)를 찾아가니 입구에는 할머니들이 점괘를 보면서도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미소를 보내주는 여유를 보여준다 조그마한 절을 단숨에 구경하고 돌담과 돌바닥 길을 따라 찾은 곳은 만수궁(萬壽宮)이었다 마당에는 팔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오도루(悟道樓) 누각에 나무로 만들어진 삼국지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화혁명 때에 진흙으로 덮고 그 위에 모택동 만수무강이라 새김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오도루의 나무 조각상을 뒤로하고 본당 옆으로 들어서니 도교에 대한 홍보에 열중하는 사람과 팔뚝만한 향을 피우면서 소원 성취 바라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만수궁을 나와 서쪽 성벽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드니 마작과 카드 놀이하면서 소일하는 주민들과 꼬마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약 1시간을 통해 6백년 역사를 다 느낄 수는 없었지만 무더운 날씨 때문에 발길을 돌릴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3시 청암고진을 출발하여 1시간 정도 달려 귀양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박물관 2층에는 귀주성에 많이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인 묘족, 동족, 부이족, 요족의 생활양식을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었고 1층에는 각종 수공예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구경을 하고 시내 중심을 흐르는 남명하(南明河)의 중간에 자리 잡은 귀양의 상징인 갑수루(甲秀樓)에 도착하니 5시 20분이었다 1597년에 과거 시험에 갑수(장원)의 인재들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건설된 갑수루는 20m 높이의 3층 누각으로 주변의 현대식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3층 누각에 올라 바라본 뒤편의 용문서원은 지금은 찻집으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멀리 무지개가 귀양에서의 첫날 여행을 환영해주고 있었다 6시가 되자 빗방울이 들기 시작하였다 긴 머리카락을 말아 감아올린 머리에 화려한 장식을 한 동족(侗族) 아가씨들이 맞아주는 식당에서 신맛을 특징으로 하는 수안탕위(酸湯魚)를 맛보면서 귀주의 명주(名酒) 모태(茅台)주는 아니지만 소주 한 잔 하면서 피로를 풀어본다 여행 첫날인데 호텔 방에 있는 시간이 아까워 부근에 위치한 인민광장 둘러보고 약 20분 정도 걸어 갑수루를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하길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갑수루 주변은 조명을 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아름답고 화려한 야경을 생각하면서 갑수루를 찾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넓은 광장에서 울러 퍼지는 음악 소리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접는다 7 24(토) 안순 황과수 폭포 - 흥의 8시 호텔을 나와 1시간 반 정도 달려 안순(安順)을 통과하여 10시경 황과수(黃菓樹) 풍경구에 도착하였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키가 작은 현지 가이드가 틈새를 이용해 표를 구입하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먼저 버스를 갈아타고 7㎞ 정도 떨어져 있는 황과수 풍경구 내에 있는 천성교(天星橋) 풍경구를 찾았다 천성교 풍경구는 천성분경구(天星盆景區), 천성동(天星洞), 수상석림(水上石林) 등 세 구역으로 되어 있었다 계곡을 조금 내려가니 먼저 수생보(數生步)가 보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면위에 드러난 징검다리를 일렬로 건너면서 주변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돌 징검다리 하나하나에 1년 365일 날짜를 새겨 두었기에 자기 생일 날짜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정 날짜에는 유명인사의 이름도 새겨 기념하는 것 같았다 우기였기에 계곡물은 맑지는 않았지만 주변 석회암 바위에 자라는 선인장의 모습이 특이하였으며 계곡 구석에는 포의족(布依族) 꼬마와 할머니들이 화려한 꽃과 과일을 팔고 있었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다 해서 이름 붙여진 포의족은 납염(臘染 :녹인 황랍을 천의 무늬에 붓고 염색 후 제거하여 그 부분만 백색으로 남김)으로 유명하며, 혼인을 하여도 신부가 바로 신랑 집에서 살지 않고 신랑 집에 일이 있을 때 가서 잠을 자고 아이가 생기면 그때서야 신랑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 당일 날 친정으로 갔다가 곧장 저녁에 시집으로 와버린다고 한다 바람, 물, 세월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경관들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니 지하에서 물이 솟아나는 용천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약 1시간을 더위와 싸우다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를 감는 형상을 한 나무인 ‘미녀용(美女榕 Beuty Banyan)’에 도착하였다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인생백태(人生百態)를 지나 천성호(天星湖)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천성호 가운데에 있는 바위모양이 마치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천성호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상석림으로 구경을 해야 하는데 비가 많이 왔기에 수상석림 가는 길이 물에 잠겨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황과수 폭포로 향했다 매표소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계단을 내려가니 물보라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비가 솟아지기 시작했다 폭포 주변에 황갈용(黃葛榕 벵골보리수 : 갈(葛)을 과(果)로 발음 )이 많아 이름 지어진 황과수 폭포는 높이가 74m, 폭이 81m로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황과수 폭포는 수렴동(水簾洞 물로 된 커튼)이란 동굴을 가지고 있어 뒤쪽에서도 볼 수 있기에 6방향에서 볼 수 있는 A가 5개나 붙은 유명 관광지이다 예년에 비해 비가 너무 많아 폭포 뒤에 있는 동굴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계곡 밑에서 바라본 폭포수의 위용에 다소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말발굽 모양의 U자 계곡 가운데에 쏟아지는 폭포수는 억수같이 뿌리는 빗방울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반대쪽 계곡에서 오는 사람들이 수렴동굴을 통해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능선을 따라 폭포 물이 떨어지고 있는 지점까지 다가가보니 수량이 엄청나게 많았으며 소리 또한 엄청나 옆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 동굴을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수렴동은 6개의 동굴 창구가 있다는데 동굴 창구에서 바라본 폭포수는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수량이 너무 많아 바깥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폭포 뒤에서 보낸 약 10분의 시간은 이미 이번 여행의 충족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와 구름다리를 건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발지점인 분재원에 도착하였다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분재원을 구경하다 오후 5시 폭포를 출발하여 흥의(興義)로 향했다 구름 낀 산봉우리와 능선의 옥수수 밭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해바라기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달리다 6시 경 북반강(北盤江) 대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흥의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