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케이크와 와이로…그리고 김치찌개'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들은 실화이기도 합니다 주요 보직을 맡게 된 공무원의 집에, 명절이 되자 케이크 박스들이 배달돼 왔다고 합니다 저녁나절이 돼서는 한 두 개가 아니라 10개도 넘게 들어와서 이 공무원은 그 케이크들을 주변 이웃과 함께 나눴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웃들이 이 공무원을 대하는 눈빛이 평소 같지 않더라는 겁니다 눈길을 피하기도 하고 겸연쩍은 웃음을 짓기도 하고… 짐작하셨는지요 알고 보니 그 케이크 박스에는 케이크만 든 것이 아니라 돈 봉투도 함께 들어있었다는 것 어린 시절 익숙하게 사용하던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와이로" "친구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가시면 와이로 먹이러 왔다고 수군거리곤 했다" 주는 이는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주지 못한 이는 까닭 없이 주눅이 들던 그 와이로 물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선생님들껜 죄송한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권한을 가진 누군가에게 촌지나 선물을 건네고 그 대가를 은근히 기대하는 그 저렴한 풍토들 김영란법, 한편에선 우려가 강하게 등장합니다 농가와 식당과 자영업자들이 모두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우려들 사이로는 맛깔스런 상차림과 고급스런 선물세트 수십만원을 호가한다는 화환의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이것을 먹어보고 보내보고 받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오히려 우리네 얇은 주머니 사정에 걸맞는 가볍고도 민망한 선물세트를 어떻게든 실속 있게 보이고자 사람들은 애를 써오지 않았는지요 김영란법이 금하고 있는 것은 값비싼 무엇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값비싼 무언가를 '특정인'과는 주고받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는지 "김치찌개 내 돈으로 먹어도 됩니다 " 작년 앵커브리핑에서 소개했던 중앙일보 이규연 당시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김영란법에서 언론인은 빼야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이 나오자 그 핑계로 법 통과를 미루지 말라며 내놓았던 글이지요 참고로 그 난감했던 케이크 선물을 받았던 공무원은 원래 청렴하기로 이름났던 분이었고, 그 아들도 부친의 뒤를 이어서 공무원의 길을 깨끗하게 걷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