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 속셈과 뒤통수 치기, 배신

동상이몽(同床異夢): 속셈과 뒤통수 치기, 배신

역사를 들여다보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나 의기투합해 한 배를 탄 인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반목과 배신 속에서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강력한 공동의 적이 있을 때는 함께 뭉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될 만한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등을 돌리곤 한다 마치 겉으로는 같은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을 일컬어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 하지 않던가 관료사회는 특히 이러한 동상이몽이 빈번히 벌어지는 무대였다 작은 파벌 하나라도 형성되면, 겉으론 한목소리를 내다가도 언제나 개인적 이익이나 권력의 배분 문제로 순식간에 갈라져 치열하게 싸웠다 심지어 함께 역모를 꾸미거나 반란을 주도하다가도, 막판에 뒤통수를 치며 모두를 손에 넣으려 애쓰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다음에 소개할 몇 가지 사례는 중국사의 중요한 시기에 실제로 벌어진 비극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장면들이다 1 당태종 이세민과 현무문의 변: “만약 이세민이 피살되었다면?” 당나라 초기, 이세민과 형 이건성, 그리고 동생 이원길은 원래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친형제였으나, 황위 계승 문제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불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세민은 반수(反隋)의 대업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고, 뛰어난 무공과 지략 덕분에 그 명성이 천하에 알려져 많은 지지 세력을 거느렸다 부친인 당고조 이연 역시 한때 그를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결국에는 맏아들 이건성을 후계자로 책봉하고 말았다 그러나 태자가 된 이건성은 업적이나 재능 면에서 모두 이세민에게 뒤떨어졌고, 이로 인해 늘 콤플렉스를 품었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도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면서, 끊임없이 이세민을 해칠 궁리를 했다 여기에 동생 이원길이 가세했다 이원길은 국가를 세우는 대업에서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면 겁을 먹고 도망치기 일쑤인 문제아였다 그런데도 이세민을 모함하는 일만큼은 앞장서서 열심히 실행했으니, 교활하고 비열한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세민의 술에 독을 타려 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복병을 숨겨 매복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행이 좌절되거나 미수에 그쳤다 심지어 황제인 아버지와 이세민을 함께 지하실에 가두고 작은 구멍으로 밥만 넣어주는 발상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하늘이 도운 것인지, 이세민은 형과 동생의 온갖 모의를 피한 뒤 현무문의 변을 통해 오히려 그들을 제거하고 황제가 되었다 문제는 ‘만약’이라는 가정이다 만약 이세민이 그들 중 하나라도 꾸민 음모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었다면, 당나라의 제위는 이건성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태자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야심이 대단했던 이원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으리라 두 형제는 어차피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으니, 이세민이라는 걸림돌이 제거되었다면 둘 사이에 새롭고 더 끔찍한 싸움이 벌어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이 복잡다단한 형제싸움은, 겉으로는 함께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꿈을 꾸다 파멸로 치달아간 ‘동상이몽’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2 재상 양염(미남)을 죽인 노기(추남) 당 덕종 시대에 양염과 노기는 함께 재상에 임명되었다 두 사람은 외모부터 달랐다 양염은 지적 능력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수염이 아름답고 자태가 훤칠한 미남으로 유명했다 반면 노기는 얼굴에 큰 점이 있고 외모가 추했으며,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능해 아첨이나 음험한 모사에 익숙했다 특히 능력 있는 인재들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데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양염은 공무로 함께 지내면서도 노기를 무시하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당시 제도에 따르면 재상들은 같은 식탁에 모여 식사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양염은 노기와 마주앉기 싫다며 늘 핑계를 대고 혼자 밥을 먹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 노기에게 “양대인은 당신을 무시하고 싶어서 함께 식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일러바치자, 노기는 불만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노기는 양염이 거느리던 부하의 과오를 황제에게 직접 고발하는 방식을 택해 양염을 곤란에 빠뜨렸다 양염 입장에서 보면, 부하의 잘못은 자신이 문책할 일이고, 혹 황제의 허락이 필요하다면 재상인 자신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절차상 맞았다 그런데 노기는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곧장 황제 앞에 나서, 양염을 압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서로가 서로의 건의를 반대하거나 다른 인사를 추천해 늘 충돌을 일으켰다 마침내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황제가 이희열이라는 인물을 택했을 때, 양염은 그 인물의 흉악함을 들어 강력히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미 황제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양염의 도전은 부담으로 여겨졌고, 왕실도 그를 점차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이 틈을 노기가 놓칠 리 없었다 마침 큰비가 내려 이희열의 출병이 지연되자, 노기는 곧장 덕종 황제에게 “이희열이 출진을 늦추는 것은 양염이 출병을 반대했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참소했다 그리고 “양염을 잠시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면, 이희열이 안심하고 반란군을 평정할 것”이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덕종은 이를 그럴듯하게 여기며 양염을 재상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후 노기는 양염이 장안 곡강(曲江) 지역에 가묘(家廟)를 세운 일을 모반죄로 몰아세워, 결국 양염을 해남도로 유배 보냈고 그곳에서 죽게 만들었다 이처럼 교활한 노기는 처음부터 양염을 제거할 의도가 있었고, 양염은 정면대결하는 자신의 성격 탓에 노기의 음모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겉으로는 같은 조정의 재상으로 함께 일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다른 꿈을 꾸고 있던 전형적인 동상이몽 사례였다 3 당 문종 시기의 ‘감로의 정변’: 공을 독차지하려다 화를 당하다 당 문종 때에는 환관의 권력이 극에 달해 있었다 문종 이전에 황제였던 현종과 경종조차 환관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으며, 문종 본인 역시 환관 왕수징의 힘으로 겨우 제위에 올랐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왕수징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참아온 문종은 언젠가부터 이대로 두면 더 큰 화를 부른다고 여겨 환관 세력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때 문종이 지목한 인물이 정주와 이훈이다 둘은 본래 왕수징에게 빌붙어 출세한 인물들이었으나, 황제의 의중을 파악한 후에는 환관을 몰아내는 데 적극 가담하기로 했다 문종도 그들이 왕수징 세력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의심을 사지 않고 큰 계획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먼저 이들은 간단한 방식으로 왕수징을 암살했다 황제가 보낸 술에 독을 타 그를 죽인 뒤, 마치 의심을 무마시키듯 왕수징에게 높은 관직을 추증하고 최대한 예우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런 뒤 본격적으로 나머지 환관들을 제거하기 위해, 왕수징의 장례식에 모일 환관들을 포위해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훈이 야심을 드러낸다 기존에는 정주와 협력하는 척했지만, 환관 세력을 소탕한 뒤 곧장 정주까지 제거해 스스로 조정의 대권을 독차지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835년(태화 9년), 이훈은 ‘감로가 석류나무 위에서 내린다’는 미명(美名)으로 환관들을 궁궐로 유인해 몰살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누설되자 환관들은 급히 달아났고, 오히려 이훈이 체포되어 즉시 처형당하고 말았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정주는 군사를 움직이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그 역시 머리를 내놓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감로의 정변(甘露之變)’은, 처음엔 협력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꿈을 꾸다가 파국으로 끝난 ‘동상이몽’의 또 다른 사례였다 4 남당 말기의 간신들: 함께 자결하기로 해놓고는 남당의 마지막 황제 이욱(李煜) 시절, 장계와 진교라는 간신 두 명이 이욱 곁에 있었다 그들은 송나라의 대군이 강남을 침공해 남당의 군대가 사실상 괴멸된 사실을 끝까지 숨겼다 때문에 이욱은 전혀 경각심 없이 편안히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금릉성에 올라 사방을 보니 이미 적국의 깃발이 가득 펄럭이고 강 위에는 송군의 전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신하들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장계와 진교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직감하고, 결국 함께 자결해 죗값을 치르기로 약속한다 궁으로 들어가 이욱에게 작별을 고하며 “자신들이 속인 죄를 죽음으로 사죄하겠다”고 맹세했다 진교는 이 말을 실제로 지켰다 집으로 돌아간 뒤 목을 매어 자결했고, 그 죽음에 앞서 “송나라 황제가 이욱을 질책하면 모든 죄를 자신에게 덮어씌워 달라”고 간언까지 했다 그러나 장계는 달랐다 그는 진작부터 죽을 마음이 없었고, 이욱에게 “폐하께서 송군에게 사로잡히실지 모르는데, 제가 살아남아 폐하의 누명을 벗겨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남긴 뒤 스스로 죽기를 피했다 곧바로 송나라에 투항했고, 새로운 왕조의 요직에 올라 제 목숨과 지위를 동시에 보장받았다 한때 함께 자결하고 나라에 대한 죗값을 치르자고 손을 맞잡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장계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로운 길을 택하며 끝내 배신의 길을 걸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