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68 블라디보스톡과 만주에서의 만세 운동과 강우규
1919년 3월, 국내외 각지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된다 길림성 요하현에서도 3월 4일 강우규의 주도로 일어났다 달포가 지나도록 광복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강우규는 국내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3 1운동 이후 연해주 지역 노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인동맹단에 가입하게 된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남아있는 회원 명부에 따르면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을 비롯해 연해주 지역 한인지도자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외교적인 활동에 주력했다 하지만 무장독립투쟁을 주장하는 강경파도 적지 않았다 마침 사이토가 신임총독으로 내정되고, 그의 암살 계획이 세워졌다 강우규는 죽음을 각오로 거사에 자원했다 서울까지 폭탄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천으로 폭탄을 싸서 자신의 사타구니에 둘러맨 다음 저고리와 두루마기로 가리고 먼 여정에 올랐다 강우규의 생애 마지막 여행이었다 #3 1운동의_영향#강우규#연해주_노인동맹단#파리강화회의#사이토_총독_암살_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