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32 명동촌 개척과 명동학교 개교
1899년, 함경도 일대는 극심한 자연재해로 흉년이 계속되고 있었다 김약연을 비롯한 다섯 가문의 선비들은 강 건너 기름진 땅을 주목했다 당시만 해도 국경이 정립되지 않아 간도는 조선인들이 쉽게 드나드는 땅이었다 2월 18일, 김약연 등 14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넜다 명동촌에 이주한 양반들은 직접 땅을 개간했다 그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서당을 여는 것이었다 선비들은 각자의 서당을 중심으로 1,000세대에 달하는 한인촌을 이끌었다 마을 이름은 조국을 밝힌다는 뜻의 명동촌이었다 명동촌 한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인재를 키워 국력을 회복하고, 민족의 희망을 되살리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 중심에 젊은 유학자 김약연이 있었다 마을을 개척한 지 10년이 되는 해, 김약연은 명동학교를 설립했다 각 가문에서 운영해오던 사설 서당들을 통폐합해 근대적 교육기관을 세운 것이다 명동학교는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서전서숙의 건학이념과 교육과정을 도입해 신학문을 가르쳤다 명동학교는 개교와 동시에 간도 일대에서 독보적인 한인 학교로 자리 잡았다 재학생만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도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여학생을 위한 교육과정도 따로 개설했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이름조차 없었던 현실과 비교할 때, 명동여학교의 설립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간도_이주 #김약연 #명동촌 #명동학교 #민족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