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 박인희 (1978) (가사)
MIBS – 세월이 가면 - 박인희 이 곡은 1978년 박인희 정규앨범 “고은노래 모음3집”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이 노래는 6․25전쟁이 끝나고 3년쯤 뒤인 1956년 초봄에 만들어졌다 이야기 버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사연은 이렇다 명동에 ‘경상도집’이라는 주점이 있었다 예술인들이 들락날락하는 술집이었다 어느 날 시인 박인환을 비롯해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가수 나애심 등이 모여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한 곡 부르라고 졸랐다 나애심이 부를 노래가 없다고 꽁무니를 뺐다 이때 박인환이 종이에 뭔가 끄적이더니 합석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세월이 가면’이란 제목이 붙은 시였다 이 시를 읽고 샹송에 일가견이 있고 작곡도 할 줄 아는 팔방미인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였다 나애심이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가락을 따라 불렀다 뒤늦게 테너 임만섭이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노랫소리에 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이 노래를 나애심이 처음 불렀다고도 하고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불렀다는 얘기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신라의 달밤’ 현인이 이 노래를 부른 최초의 가수이다 그러나 당시엔 히트를 하지 못했다 바이브레이션이 독특한 현인만의 창법이 애상조의 이 노래에는 걸맞지 않았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혔던 이 노래를 1970년대에 통기타 가수인 박인희가 되살려 크게 히트를 쳤던 것이다 노래는 어떤 가수가 어떤 창법으로 부르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박인희의 청음이 시의 정서와 잘 어울렸다고 하겠다 이 시를 쓰던 그날 박인환의 표정이 어두웠다는데, 낮에 망우리에 있는 그의 첫사랑 여인의 묘소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자신의 시 ‘목마와 숙녀’를 좋아하던 여인과 피난통에 헤어졌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서 시를 썼다는 얘기도 있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쓴 일주일 뒤쯤 세상을 떠났다 1956년 3월 20일 밤이었다 세상 떠나기 사흘 전인 3월 17일에 시인 이상 추모의 밤이 있었는데 이날부터 매일 술을 마셨다 그 당시 박인환은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렸다 끼니를 거르기까지 했다는데, 그런 상태에서 술을 내리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세상을 떠난 그날도 술을 잔뜩 마시고 밤 8시 30분쯤 집에 들어온 후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다가 심장마비로 별안간 숨을 거두었다 부인 이정숙이 의사를 부르러 나간 사이였다 향년 31세였다 박인환은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용모였다 친구와 영화, 스카치위스키와 조니워커를 좋아했다 장례식 날 많은 문우들과 명동의 친구들이 왔다 모윤숙이 시 낭독을 하는 가운데 많은 추억담과 오열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망우리 묘지로 가는 그의 관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관 속에 그가 좋아했던 조니워커와 카멜 담배를 넣어주고 흙을 덮었다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그해 추석에 가까운 선후배들이 무덤 앞에 아담한 비석을 세워주었다 비석 앞면에는 ‘세월이 가면’ 첫 연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를 새겼다 박인환은 태어나서 11살까지 강원도 인제에서 살았다 2012년 10월 인제군은 고장 출신의 박인환 시인을 기리기 위해 ‘박인환문학관’을 건립하였다 ‘세월이 가면’은 세상 떠나기 불과 며칠 전에 쓴 시이기 때문에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1955)에는 없고, 20주기에 맞춰 나온 시집 『목마와 숙녀』(1976)에 실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 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