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절#성도재일#깨달음[동명스님의 생활법문] "드디어 신보다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했습니다!" - 부처님 성도의 의미
#성도재일, #성도절, #부처님, #깨달음, 불기 2565년(공력 2021년) 1월 20일 성도절을 맞이하여 - 성도절(성도재일)에 생각해보는 부처님 등장(성도, 깨달음)의 역사적 의의 #성도절 #부처님깨달음 #부처님생애 부처님 성도의 의미를 짚어보았습니다 (1) 신보다도 위대한 인간의 탄생 – 또하나의 인간선언 극단적인 고행이 궁극적인 행복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 농경제 때 선정에 들었던 경험을 떠올린다 새들이 벌레들을 쪼아먹는 것을 보고 깊은 시름에 잠겨, “도대체 왜 강한 것들이 약한 것들을 잡아먹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골몰하다가 선정에 잠겼던 것이다 그 경험을 다시 되짚어 명상에 잠긴 결과 싯다르타는 마침내 큰 깨달음을 이루고 붓다가 된다 붓다의 탄생은 인류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붓다는 천상과 지상을 통틀어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당시에 가장 위대한 존재라면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신들의 왕 인드라였는데, 이들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가 마침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곧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부처님의 탄생게가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은 신에게 종속되지 않은 인간의 자존선언이며, 인간 스스로가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중도’이다 (2)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해결사(자력신앙)의 등장 부처님께서는 난제 중의 난제인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가하셨다 그리고 그 답을 마침내 찾아내셨다 인류 역사상 생로병사와 같은 난제나 인간 구원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이는 꽤 있었다 그러나 온전한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 이는 없었다 오직 부처님만이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해결하셨으니, 문제해결의 새로운 차원을 여신 것이다 (3) 중도(연기)와 공(무아)의 발견 부처님의 깨달음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매우 간단하게 말하면 중도의 발견이다 우선 수행의 올바른 방법론부터가 중도이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전에 쾌락의 추구가 결코 궁극적인 행복의 길로 안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출가하셨다 출가하셔서 극단적인 고행을 해보았지만, 역시 극단적인 고행으로도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었다 쾌락도 고행도 아닌 중도야말로 올바른 수행법이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명상(선정 수행)의 최정점인 비상비비상처정을 획득하셨지만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없었고, 또 당시 유행했던 고행의 최정점에서도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없었다 첨단의 명상도 극도의 고행도 아닌 중도에서 길을 찾으니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깨달음의 길에 진입하실 수 있었다 중도란 무엇인가? 양 극단의 중간이 아니다 가장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파도타기를 생각해보자 파도타기 하는 이가 물 위에서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그는 바다 속으로 빠지고 만다 파도타기의 비유가 어렵다면 자전거타기를 생각해보자 자전거는 네 바퀴가 아니라 두 바퀴이기 때문에 균형이 맞지 않으면 넘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지려 할 때 핸들을 왼쪽으로 같이 틀어주면 자전거는 자연스럽게 일어서게 된다 만약 왼쪽으로 넘어지려는 것을 일으켜세운답시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면 외려 왼쪽으로 넘어지고 만다 다시 말하면 자전거의 흐름에 맞추었을 때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잘 굴러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중도이다 가장 적절한 균형, 시의적절한 판단이다 중도는 자연스럽게 공 또는 무아와 연결된다 파도타기 하는 이가 자신을 의식하고 주장하게 되면 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자전거 타는 이가 자신을 주장하여 오른쪽으로 넘어지려 할 때 굳이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넘어지고 만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을 때 파도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자전거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어 넘어지지 않고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도는 자연스럽게 무아 또는 공과 연결되는 것이다 공(무아)이란 실체는 없지만 작용은 있다는 말이다 실체란 변함없는 것을, 작용이란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연기나 무상, 무아의 교리와 맥을 같이한다 빨간 장미가 있다고 하자 이것이 빨간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여러 색 중에서 빨간색을 반사하는 것이 인간의 눈에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빨간색으로 인간에게 보이는 것이지, 그 자체가 빨간색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좀더 논의를 진전시켜보면, 모든 인간이 같은 빨간 장미를 보는 조건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보는 빨간색도 두 눈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빨간 장미의 빨강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가변적인 어떤 범주에 대한 지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장미의 빨강이라는 색이 고정된 실체라면, 모든 인간은 그것을 똑같이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색은 특수한 관계 속에서의 편차를 수반한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연기’라고 하고, 색의 편차에 따른 비규정성을 ‘공(무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나의 판단과 관련된 부분의 정당성은 ‘중도’가 된다 연기가 현상적이라면, 공은 본체적이고, 중도는 실천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공히 ‘변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자현스님, 붓다 순례, 불광출판사, 2014, 118~119쪽 실로 부처님 이전에 이와 같은 진실을 제대로 파악한 이는 없었다 심지어는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가르침을 펴신 지 260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러한 진리를 아는 이보다는 모르는 이가 더 많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같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어떠했겠는가? 결국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의 ‘바로 보기’의 출발이라고 하겠다 (4) 악마 퇴치와 진정한 영웅의 탄생 인도신화의 공식은 악마가 발흥할 때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서 이를 평정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은 할리우드 영화에 도입되어 수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배트맨, 아이언맨 등 수많은 영웅영화를 양산했다 이런 인도신화의 공식이 부처님의 깨달음에도 도입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부처님과 대항하는 이는 마라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기 직전 마라는 세상에서 자신의 입지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처님께 깨달음을 포기하라고 유혹한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세상을 제도한다면 그것은 마라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마라는 인간의 욕망과 분노, 어리석음을 먹고 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라는 어떻게든 싯다르타의 성도를 막아야 했다 마라는 싯다르타가 선정에 든 보리수 나무 아래로 왔다 그는 매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강력한 주먹이었다 “당신의 몸은 가냘프기가 마치 마른 나뭇가지 같군요 그렇게 약한 몸으로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겠어요? 살아야 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야 합니다 일어서서 운동하십시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고 즐겁게 사십시오 즐겁게 살면 건강해집니다 어렵게 수행하여 어렵게 깨치려 하지 마시고, 신에게 기도하십시오 베다를 공부하고 희생제를 지내고 불을 섬기면 얼마든지 큰 공덕을 쌓을 것입니다 그 공덕으로 즐기고 살면 인생이 얼마나 활력 넘치겠어요?” 우리는 늘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마왕의 이와 같은 강력한 펀치에 쓰러지곤 한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했던가 도가 높을수록 마귀가 극성을 부린다는 말이다 높은 도는 마귀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으면 마라를 두려워하는 이가 없어질 터이고, 그러면 자신의 힘이 크게 약화될 것이므로, 마라는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방해해야 한다 눈앞에 어슬렁거리는 마라에게 싯다르타가 말했다 “사악한 자여, 어리석은 자여, 욕심으로 똘똘 뭉친 자여! 무엇 하러 여기에 왔습니까? 이곳에서 당신은 전혀 힘을 쓸 수 없을 겁니다 그대는 세간의 복락을 찾는 자에게나 수작을 거십시오 그들에게 적당한 복을 주고 제삿밥을 얻어먹는 것이 당신의 일 아닙니까? 나는 최상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대가 나의 건강을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그대의 건강은 지금 풍전등화입니다 어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욕망을 버리세요 ” 여기서 우리는 마라가 도대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마라는 단순한 악마가 아니다 그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교활하고 힘센 자이다 교활한 악의 권능으로 마라는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생각보다 위협적인 악마이다 그런데 그 악마를 부처님께서는 물리치셨다 그 악마는 다시 말해 당시에 횡행하는 잘못된 사견을 의미한다 당시로서는 철저한 계급주의나 제사만능, 고행주의 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생활불교TV 구독하기 : 네이버 카페(생활 불교) : 네이버 블로그(동명스님의 생활불교) : blog naver com/woodenfish 다음 카페 : 페이스북 : 네이버 밴드(생활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