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0210731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 (누가복음 20장 37~40절)  이정민 목사

[새벽] 20210731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 (누가복음 20장 37~40절) 이정민 목사

성락성결교회는 한국교회저작권협회를 통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CCLI로부터 교회저작권라이선스와 스트리밍라이선스를 취득하였습니다 성락성결교회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CCLI 교회 저작권 라이선스 및 스트리밍 라이선스 규정에 따라 비영리 예배 목적으로 이용합니다 본 영상에 광고가 재생될 경우, 본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가 결정한 것으로 수익은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에게 분배됩니다 본교회의 라이선스 취득 사실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CCLI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명 : 성락성결교회 KCCA Membership #0010413-0017 CCLI License #509426 CCLI Streaming License #113912 [설교원고 전문] 오늘 새벽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오늘 새벽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0장 37-40절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보시니 목요일 본문이 누가복음 20장 20-26절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봤지만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 구절은 누가복음 20:25절입니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지금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이사의 것은 당시 로마가 선전하는 가치, 로마가 추구하는 사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그것과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방식, 제도 등이 다 포함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것은 이것과 반대인 하나님 나라의 방식과 제도, 사상으로 볼 수 있죠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대척점에 있고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히 두 가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로 대표되는 가이사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길을 가느냐 인 것이죠 어쩌면 보시니 목요일의 본문은 이생, 바로 현재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제와 오늘의 보시니 본문은 사두개인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7명의 형제들과 한 번씩 다 결혼을 한 여성의 경우를 말하면서 부활 후에 이 여성은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사두개인의 질문의 의도는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형의 대를 이어 줄 것’을 명하는 구약성경의 형사취수법 제도를 토대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에 예수님은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이생처럼 결혼하고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부활이 있으며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예수님은 출애굽기 3:6을 근거로 하나님이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말씀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죠 즉 이들은 살아있고 다가오는 세상에 부활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제와 오늘의 보시니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 논쟁에 대한 내용을 단순히 부활과 관련해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앞의 본문, 즉 가이사의 길과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라는 본문과 연결시켜 본다면 오늘 본문은 그 선택의 결과, 내세의 어떤 결과가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35절을 보시면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다가오는 시대, 즉 내세에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부활은 의인의 부활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의 부활로 선택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은 뒤집으면 의인의 부활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음을 말해줍니다 또 36절을 보시면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의인으로 부활을 입은 사람은 다시 죽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죠 이 표현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 이외의 사람들은 ‘다시 죽을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 후에 영생이 아닌 심판을 받으면, 다시 죽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가복음과 연결된 사도행전 24:15을 보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같이 언급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결국 다가오는 시대, 즉 내세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인데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한 쪽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하나님 품에 안겨 진정한 안식과 쉼을 누리는 반면, 다른 한쪽은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 영원한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럼, 여기서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경험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땅에서 가이사의 길을 간 사람은 악인의 부활로 하나님의 길을 간 사람은 의인의 부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에 대해 질문한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내에서 대표적인 친 로마적 성향을 띤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층으로 귀족들이었죠 이들이야 말로 당시에 가이사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쩌면 이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돼 있습니다 각 시편마다 주제와 내용이 다 다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편을 아우르는 시편이 있습니다 그 시편은 바로 시편 1편입니다 시편 1편이 결국 시편 150편 전체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우리 앞에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두 갈래의 길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질문합니다 시편 1편의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의인의 길을 갈 것인가, 악인의 길을 갈 것인가, 가이사의 길을 갈 것인가, 하나님의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답을 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지금도 우리들의 귓가에 악인의 길이 더 매력적이고 현명한 것이라 유혹합니다 가이사의 길이 이 시대의 대세이고 모든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이라 우리를 유혹하죠 하지만 우리는 의인의 길,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을 선택하는 순간 어려움이 찾아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길은 좁은 길이라 명하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길만이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머지않아 주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우리의 손을 들어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땅에서 의인의 길, 하나님의 길을 걸어감으로 다가오는 시대, 주님의 심판대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복 있는 사람으로 최종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겠습니다 의인의 길, 하나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가치에 휘둘려 현혹된 인생이 아닌 주님께서 명하신 분명한 말씀에 순종하여 좁은길을 선택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