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덕이슈 오늘 I 43 손양원, 죽음보다 강한 사랑
남들은 한 번 마음먹기도 힘든 일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손양원 목사. 손양원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택한 길은 나병환자들의 곁이었습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그는 가족도 친구도 저버린 나병환자들과 평생을 함께합니다. 그는 중증환자들의 거처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도와 위로를 나누는가 하면, 그들의 상처에 난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기도 할 정도로 성심을 다했습니다. 낮은 이를 섬기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일본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8년, 장로회 총회에서조차 신사참배를 받아들이지만 손양원 목사는 끝까지 이를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1940년 일제에 체포됩니다. 그리고 전향하면 풀어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5년간의 옥고를 치릅니다. 해방 후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좌우의 극심한 대립 속에 일어난 여수순천사건으로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습니다. 그런데 손양원은 두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피란 권유를 거절하고, 애양원에서 끝까지 나환자들의 곁을 지키고자 했던 손양원은 결국 공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손양원의 삶은 예수가 전한 ‘사랑’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그의 믿음과 헌신, 사랑은 빛나는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근현대 #손양원 #손양원_목사 #기독교 #여수_애양원 #나병환자 #신사참배_거부 #여수순천반란사건 #여순사건 #안재선 #손동인 #손동신 #한국전쟁 #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