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석 대위와 맹호5호 작전 띤빈전투, 휴가 반납 작전참가, 전투 중 전사, 부하 사랑 정신 모범 (최용호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11)

김무석 대위와 맹호5호 작전 띤빈전투, 휴가 반납 작전참가, 전투 중 전사, 부하 사랑 정신 모범 (최용호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11)

#맹호부대#베트남전쟁#김무석대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맹호5호 작전 띤빈마을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무석 대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무석은 1964년 2월 육군사관학교 제20기로 임관한 후 중위로 진급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 제10중대 제2소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김무석 중위는 1965년 1월 9일 고보이 평야에서 수행된 비호6호 작전 기간 중 대대의 급수 차량을 폭파하고 도주한 베트콩을 추격했습니다. 그때 그는 베트콩의 은거지까지 추격을 계속해 기습적인 작전으로 베트콩 20여 명을 사살하고 각종 무기를 노획하는 획기적인 전과를 달성했습니다. 그 공로로 김무석 중위는 그해 3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공로휴양으로 붕따우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단은 파월 이후 최초의 사단급 규모의 작전인 맹호5호 작전을 앞두고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책임의식이 워낙 투철했던 그는 자신만의 휴양이 결코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다면 소대원들은 소대장도 없이 맹호5호 작전을 수행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대원들에 대한 걱정에 서둘러 짐을 챙겨 복귀한 그는 복귀 신고를 마치자마자 작전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마침내 3월 24일 아침, 맹호5호 작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제2소대는 대대의 맨 동쪽 지역 빈안(VinhAn)마을을 목표로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제2대대가 담당한 띤빈마을 바로 서북쪽이었습니다. 그때 야자수와 바나나가 우거진 숲에서 1개 분대 규모의 베트콩이 나타나 띤빈마을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중위는 즉시 1개 분대로 소대를 엄호하게 한 후 선임하사 조를 동쪽으로 우회시키고, 나머지 병력을 자신이 지휘해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곧이어 빈안마을 앞 50m에 이르자 갑자기 서측방 후방의 대나무 숲에서 총격이 집중되면서 김정부 일병이 복부를 관통당해 쓰러졌습니다. 김무석 중위가 재빨리 김일병에게 다가가 그를 후방으로 옮긴 후 추격을 계속했습니다. 이어 두 명의 병사가 또다시 같은 방향 대나무 숲에서 날아온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이제까지의 정황을 볼 때 베트콩의 주력은 대나무 숲에 매복하고 있었으며, 1개 분대는 김무석 중위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김무석 중위는 서쪽의 대나무 숲에 숨어 있는 베트콩 주력을 먼저 격파하기로 하고 사수가 부상 당한 자동화기를 자신이 직접 들고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때마침 중대장도 사태를 파악하고 제1소대에게 2소대를 지원해 대나무 숲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10중대의 1·2소대가 동시에 공격을 감행하자 견딜 수 없게 된 2개 분대 규모의 베트콩이 분산해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호기를 포착한 김무석 중위가 1개 소대 규모의 베트콩을 계속 추격하자 그들이 향한 곳은 띤빈마을이었습니다. 김중위가 띤빈마을 방향으로 추격을 계속하게 되자 김중위와 소대는 어느 사이에 제5중대가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띤빈마을 서측방 공동묘지 능선에 도달했습니다. 그곳에서 잠복호를 구축해 저항하는 베트콩 진지를 하나하나 격파하고 있던 김무석 중위가 묘지를 은폐물로 삼아 분대장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김중위가 있던 바로 그 묘지 하단에 잠복호를 구축해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이 불과 2m 전방에서 그를 향해 사격했습니다. 그는 두부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그 직후 도착한 제5중대 2소대가 베트콩의 잠복호에 수류탄을 투척해 그들을 폭사시켰는데, 그곳에는 베트콩 2명이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편모슬하에서 외롭게 성장한 김무석 중위는 남달리 책임감이 투철했으며, 소대원들을 친형제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위험은 생각지도 않고 휴가를 반납해 가며 작전에 참가했던 것입니다. 그가 쓰러진 직후 현장에 도착한 중대장에게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임관 반지를 건네며, “이 반지를 어머니께 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한 후 후송 헬기에 실렸습니다. 김무석 중위는 제106후송병원에 도착해 즉각 수술에 들어갔지만, 수술 도중 숨을 거두었습니다. 중대장에게 남긴 부탁은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김무석 중위의 책임감과 부하사랑 정신을 높이 평가해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김무석 대위의 묘역은 국립서울현충원 제51묘역으로 거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전사한 4명의 장교가 나란히 영면하고 있습니다. 고 김무석 대위의 나라 사랑 정신과 활약에 경의를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