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힐링 HEALING TIME]⑩ 불멸의 색채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명작 힐링 HEALING TIME]⑩ 불멸의 색채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불멸의 색채 화가 야수파의 창시자 마티스, 피카소와 라이벌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CITY ART 과거가 있어 현재가 있다 변화를 앞세운 시대에도 예술적 가치관은 지켜지길 CITY ART There is a past, there is a present May the artistic values ​​be preserved even in the post corona era of change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20세기 회화의 혁명인 야수파(포비슴) 운동을 주도한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이다 마티스는 보색관계를 살린 색면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확고한 자신만의 예술을 구축하였고,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지침이 되었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에서부터 포비스트 스타일의 담대하게 채색 된 작품, 지난 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컷 아웃 종이 작품까지 오늘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에 존재하고, 20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된다 마티스는 회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판화, 조각 분야에서도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남겼다 ‘색채의 마법사’로 통할 만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감각으로 색을 사용했다 20세기 초반 야수파 운동을 주도하며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유럽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는 마티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늘 경쟁의식을 느꼈다 파블로 피카소와 세기의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하다 마티스는 1869년 프랑스 북부 시골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고향에서 서기로 일했다 스무 살 되던 해 맹장염 수술을 받고 요양하던 중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이웃 사람의 권유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다 1891년 파리에 있는 국립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에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떨어졌다 이듬해 저명한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화실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다 모로는 당시 고전주의 미술과 아방가르드 미술이 공존했던 프랑스 미술계의 다리 같은 존재였다 마티스는 그에게서 색채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었고, 고전주의적 화풍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화법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을 실험했다 1895년 에콜 데 보자르에 합격하여 학교를 다니면서도 1898년까지 모로에게 그림을 배웠다 1905년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 운동의 선구자로 유명한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을 만났고 둘은 색과 빛에 대한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적인 그림을 그렸다 1905년 그들의 전시회를 본 비평가 루이 보셀은 그들의 그림을 혹평하며 ‘야수(Les Fauves)’와 같다고 조롱했고 이후 야수파라는 명칭을 얻었다 1905년 거트루드 스타인의 소개로 파블로 피카소를 만났고 친구이자 라이벌로 평생 교류했다 두 예술가는 서로 영향을 받으며 폴 세잔 이후 현대 미술의 양대 축을 이룬 예술가로 성장한다 1906년 북아프리카 여행에서 아라베스크 무늬와 이국적인 조형물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영향은 이후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1907년부터는 과감한 색채가 특징인 야수파 스타일을 버리고 장식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 아울러 회화에서 인체 형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조각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그는 징병을 면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미쳐 이 당시 그린 그림에서는 마티스 특유의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 대신 우울하고 칙칙한 무채색 톤의 그림을 그렸다 1917년에 파리를 떠나 니스로 거처를 옮겼고, 더욱 강렬하고 대비가 두드러지는 색채를 사용했다 1925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최고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30년대 이후 마티스는 자신의 예술이 과거를 답습한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히티, 미국 등지를 여행했고, 직물 디자인, 유리 공예, 책 삽화, 성당 벽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했다 1939년 부인과의 이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등은 예민한 예술가였던 그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고 급기야 1941년에는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작품 활동이 어려워지자 안락의자나 침대에 누워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색종이 작품을 만들었다 색종이 작품으로 사물의 본질적인 면을 표현하면서 그의 예술 세계는 더욱 풍부해졌다 말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남부 로제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색종이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티스는 단순 명쾌한 선과 밝고 순수한 빛의 색으로 평면 회화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색에 있어서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 준 그는 특히 ‘마티스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파란색을 즐겨 사용했다 회화 외에도 조각, 동판화, 직물 디자인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