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31] 사람과 사람 사이(narr)
[영상일기 31] 사람과 사람 사이(narr) bgm - Jung Jae Hyung ‘Mistral’ (Official Audio) 해방촌 근처 독서모임에 갔다. 연말이라고 이것저것 준비해두신 카페사장님의 사정이 걱정되었지만 경품 추첨 번호는 4번을 골랐다. 피자와 치킨을 먹고 책 얘기를 시작했다. 올해 좋았던 책에 대해 얘기하기. 누구는 두루뭉술하게 누구는 읽고 있는 책을 얘기했다. 누구는 좋았던 구절을 사람 수만큼 가져와 나눠줬다. 대부분 두서없는 이야기였고 돌아가며 말 한다는 것에 의의가 컸다. 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얘기했다. 나 얘기 마찬가지였다. 내일 누구 하나 기억해준다면 다행일 터. 하지만 좋았다. 따뜻했다. 입으로 주고 받는 온기는 어떤 것 못지 않게 귀하니까. 귀여운 사람들의 독서모임에서 괜히 무거운 얘기를 했나 잠깐 의심했다. 사실 그들처럼 나도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도처에 깔린 사랑 덕에 올해를 또 보냈다고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건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을 봤다. 1900년대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은 버려진 소녀들을 데려다 착취와 학대를 일삼았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참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침묵하는 표정들을 지켜보며 어떤 선택을 할지 가슴 졸이게 된다. 참혹한 사건들을 마주할 때 피해자들의 고통에 마음이 먼저 닿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후 애도하고 기억하고 구원하려는 제 삼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는다. 영화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 같은 것에. 내가 싸이코패스인가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죽은 자들은 사라졌고 산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고통스러운 사건을 접했을 때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흰 바탕에 커다란 밝음들보다 어둠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이 강렬해보이는 건 당연한걸까. 애매한 서민층의 본능인지 비슷한 이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 같아 느끼는 미안함 때문인지, 이 작은 빛을 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어떤 작가의 기록과 이야기들, 한 곳에 모여 밝히는 작은 빛들, 지쳐 쓰러지지 말라며 쌓여가는 김밥들 같은. 옆 자리 동료가 감기에 걸려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모습에 잃어버린 인류애를 먼 곳의 다른 이들에게서 충전한다. 1월 1일은 다른 날과 다름 없지 않나요? 라고 누가 물었다. 괜히 1월 1일이라는 기한으로 과거와 미래를 한 번 선 긋는다고 했다. 이참에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과거에 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고 생각해보면 좋지 않냐고 답했다.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해본다고 말이다. "의미 없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철학자나 생물학자나 그렇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 부여하며 살아야겠더라. 재미있게 살려면 그래야겠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