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 다시 들여다보기(누가복음 강해,15:1-32) 190210 샘물가교회 한광선 목사

탕자의 비유 다시 들여다보기(누가복음 강해,15:1-32) 190210 샘물가교회 한광선 목사

19 2 10 오후 설교(누가복음15장 강해) "탕자의 비유 다시 들여다보기"눅15장은 전체가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드려 적용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의도와 취지를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전후 사정과 배경까지 자세히 이해한다면 말씀의 참된 뜻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비유 말씀 속에는 바리새인 곧 서기관들의 오만함을 지적하시며 죄인은 누구나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켜 회개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한마디로 "너희 바리새인들 모두 죄인인데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사람의 회개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세리들, 곧 죄인으로 불리는 그들은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15:1)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 곧 서기관(율법학자)들은 수군거리며 예수님이 "죄인을 받아드리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 비난하고 있습니다 (2) 자신들은 의인으로,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들은 모두 죄인으로 정죄하며 상종하지 않았던 그들입니다 (눅18:9-12) 양 백 마리의 비유(4-7), 열 드라크마의 비유(8-10), 탕자의 비유(11-32)의 말씀의 공통점은 회개(7, 10, 24)하면 하늘과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며 즐거운 잔치를 벌인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백 마리의 양떼를 회복한 것, 한 드라크마(은전)를 잃었다 찾아내어 열 드라크마를 채운 것, 나갔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 모두 아버지께 기쁨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 아래 갇혀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 아니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스로 의인임을 자처하는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리며 같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죄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 안타깝게도 그들 가운데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고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인생 모두는 죄인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우리는 복음을 듣고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들을 귀가 있어서 듣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백성, 교회의 지체인 성도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시작은 회개로부터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세세의 생"에 이르는 것이며 그 출발은 하나님께로 돌이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서 살펴볼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케 되는 일(100% 꽉 채워지는 상태)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온전케 되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의 완성입니다 교회는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완성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아내(어린 양의 신부)의 지체로서 흠이 없이 몸에 붙어 있어 온전하게 되도록 덕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 세워지게 될 교회의 의미를 미리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양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없어지면 그 온 무리에게 흠이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열 드라크마로 만들어진 귀한 상품(약혼선물로 사용)이 하나의 드라크마가 이탈하므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함께 있는 다른 개체들도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 원상 회복하여야 합니다 한 마리 양과 하나의 드라크마는 교회의 지체 가운데서 하나가 없어져 흠이 생긴 것의 비유입니다 떠난 그 지체를 찾아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른바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 위치"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 아들의 원대로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나가 살게 하였지만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 최고의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베풉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23)고 즐거워 말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나간 아들은 죽은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지체로 있다가 떨어져 나가면 실족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 죽었던 아들, 잃었던 아들을 아버지는 다시 얻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집나간 성도가 다시 돌아 올 때 하늘(들)의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와 같이 기뻐하심을 확신합니다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었던 맏아들의 생각은 아버지와 같지 않습니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성대한 잔치로 맞이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하 불만이 가득합니다 물론 동생에 대하여도 곱게 생각할리가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으뜸은 형제 사랑입니다 새 계명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맏아들과 탕자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그 집(교회) 지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지옥 불에 던져 지리라”(마5:22) 맏아들은 노하고 있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28)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9-30)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 아들도 아직 회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회개하지 않은 형제가 있습니까? 돌이켜야 합니다 맞아들은 집 안의 잔치에 들어오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큰 아들을 달래려고 밖으로 나옵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큰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1-32) 성경은 맏아들이 집안에 들어가 잔치를 즐겼는지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동생도 밖으로 나와 형을 맞이했는지도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두 아들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그렇게 채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남은 것은 맏아들의 회개입니다 아멘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