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호국의 증언 ② - 생애 첫 휴가 중 참전…호국 산증인 송석준 옹

[정전협정 70주년] 호국의 증언 ② - 생애 첫 휴가 중 참전…호국 산증인 송석준 옹

[국방뉴스] 2023.02.23 [정전협정 70주년] 호국의 증언 ② - 생애 첫 휴가 중 참전…호국 산증인 송석준 옹 국방뉴스는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으로 호국의 산증인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두 개의 동성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송석준 옹의 이야기를 배창학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 노병이 있습니다. 주름이 가득하고 흰머리가 성성한 노병은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청년이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적과 맞서 싸우며 결기와 투혼, 혼신을 보였던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받게 되었고 돌아오지 않을 젊음과 맞바꾼 고귀한 증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둘도 없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한 요양기관에서 6·25전쟁의 영웅 송석준 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본래 군인이었던 송 옹. 꿈만 같았던 생애 첫 휴가는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었습니다. 휴가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사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터뷰] 송석준 옹 / 6·25전쟁 참전용사 : 저는 6·25전쟁 전에 입대를 했고 전쟁이 나던 날에는 휴가를 나왔어요. 그런데 이장쯤 되는 양반이 저를 보더니 (전쟁이 났다며) 빨리 가라면서 부대로 복귀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군인정신이 꽉 들었죠. #배창학_기자 #배창학 #정전협정70주년 #정전협정 #호국의증언 #송석준옹 #송석준 총성과 포성 그리고 비명과 울음소리 뒤로 피와 진흙이 한데 섞인 전쟁터를 누비며 전투를 벌였던 송 옹. 그때를 떠올리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립니다. [인터뷰] 송석준 옹 / 6·25전쟁 참전용사 : 포항시 영덕지구에 안강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 전투가 굉장히 심했고. 현리전투라고 있어요. 현리전투. 당시에 아군이 많이 죽었습니다. 죽은 우리 전우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말을 못 해요.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납니다. 흐르는 시간 앞에 송 옹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전우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했습니다. [인터뷰] 송석준 옹 / 6·25전쟁 참전용사 :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6·25전쟁 이후 연락이 다 끊겼으니까요. 그러나 주소들은 지금도 제가 알고 있어요. 영주군 풍기면 백동 권태욱, 또 거창군에 있다던 유경덕. 그 사람들은 제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형제 이상으로 지냈으니까... 빛바랜 흑백사진 속 전우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또 다른 형제들이었기에 한 명 한 명 떠나보낼 때마다 고통은 배가 되었습니다. 아픔과 상처만이 가득했던 그에게 손길을 뻗은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6·25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었습니다. [인터뷰] 송석준 옹 / 6·25전쟁 참전용사 : 무공훈장 수훈자들을 찾는 부서에서 저를 찾아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 국방부 장관 화환도 받고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 있는 곳에서 악수도 해주시고 그래서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참 영광입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다했던 송석준 옹. 73년 전 자신이 그랬듯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내건 국군장병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도 남겼습니다. [인터뷰] 송석준 옹 / 6·25전쟁 참전용사 : 국방과 안보의 임무를 맡은 모두가 잘해야죠.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 이런 정신으로 말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영웅을 찾는 날까지 국가와 국민과 국군은 영웅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정전협정 70주년 호국의 증언 배창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