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臨淸閣)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살림집으로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청각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낸 바 있는 이명이 1515년(중종 10)에 건립한 주택이며,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대종택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청각은 건축한 조선 중기의 종택 건물과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임청각의 별당,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이 3천석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하고, 안동에서 최초로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존댓말을 쓰고, 양반과 노비가 함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외친 공간이다. 하늘(나라)이 무너졌을 때 시대를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된 공간이 임청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