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노인의유언장

#어느노인의유언장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 되었다 ​ 장성한 두 아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 어느 날 아들들이 아버지 집에 와서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보던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열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속으로,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놓은 금덩이 일거야!' ​ 아들들은 그때부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이상한 효심이 넘쳤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돌아가셨고 아들들은 장례를 치룬 후, 침이 마르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궁금한 궤짝을 열어 보았다 ​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화를 내었다 서로 쳐다보며 소리없이 말했다 "당했군!" ​ 그리고 형은, 궤짝을 바라보는 동생을 향해 "왜?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동생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적막한 시간이 1분, 2분, 3분 흐른뒤 동생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생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은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 는 옛 말을 생각하며, ​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 동생은 편지를 읽어내려 가다가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 딸도 달려왔다 ​ 그 글은 이러하였다 ​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자식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이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으로ᆢ 지금은 사금파리,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기억만 남아있구나ᆢ ​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그들의 늙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 그 아내와 아들딸도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등켜 안고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