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강서구 대량해고 위기 아파트 경비원들, 침묵의 삭발식
60~70대 경비원 30여명이 아파트 단지 입구에 모였다 경비원 2명이 흰색 보를 몸에 두르고 의자에 앉았다 보에는 ‘더불어 사는 우리 마을, 경비원의 해고를 반대합니다’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다른 경비원들이 ‘바리깡’으로 불리는 이발기로 두 사람의 머리를 깎았다 입구에 난 도로 건너편에선 주민들이 모여 이 모습을 지켜봤다 침묵만이 흘렀다 지난달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가구당 7만원 정도의 관리비 절감을 이유로 경비원 44명 해고를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ㄱ아파트 지난 24일 경비원들 중 상당수가 결국 해고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귀하께서는 2016년 3월1일부터 당사와 같이 경비근무를 할 수 없음을 통보드립니다 건강하시고 가내 화평하시길 바랍니다’란 내용이었다 새 용역경비업체가 이들의 고용 승계를 거부한 것이다 23일 경비원들을 상대로 면접을 치른 지 하루 만이었다 경비원들은 25일 주민 및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ㄱ아파트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에 항의하는 뜻으로 ‘삭발식’을 거행했다 경비원 이모씨는 “10년 이상 근속한 경비원도 있는데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는 건 참기 어렵다”며 “면접한 다음날 바로 해고 문자를 보낸 걸 보면 면접은 결국 해고를 위한 명분 쌓기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ㄱ아파트 경비원 44명 전원해고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경비원 44명 중 35명이 같은 문자를 받은 상태이고, 나머지 경비원들의 앞날도 알 수 없다 애초 ㄱ아파트에서 경비원 해고 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통합전자보안시스템 도입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난달 가구마다 방문해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었다 경비원 최모씨는 이날 회견에서 “통합전자보안시스템 도입 찬반 투표를 했다지만 그 결과를 투명하게 아는 주민이 아무도 없다”며 “경비원들을 내보내는 건 전적으로 주민의 뜻이라지만 내보낼 때 내보내더라도 그 과정만큼은 정당하게 집행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이날 회견에 참석해 목소리를 보탰다 민영자씨(70)는 “경비원들이 하는 일을 CC(폐쇄회로)TV가 대신 해줄 수는 없다”며 “낙엽 쓸기, 화단 조성, 택배 보관 같은 일들을 통합전자보안시스템이 다 감당할 수 없고 결국 외부 용역을 쓰게 되면서 지출이 더 커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김승현씨(32)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가며 10년 동고동락한 경비원들을 자르고 보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주민들은 이미 경비원 해고를 두 차례나 막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우리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궈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ㄱ아파트는 2014년과 2015년 각각 보안시스템 도입 주민투표를 진행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지난달 입주자대표회의가 집집마다 방문해 도입 찬반 의사를 묻고는 전체 660가구 중 406가구가 찬성했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고 직후 경비원들은 이달까지만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주민 40여명이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법에 입주자대표회의의 경비원 해고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또 150여가구의 동의를 얻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해임 투표안도 발의한 상태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 com · 영상 유명종PD yoopd@khan co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