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의 명인 지순자 선생님 철가야금 연주
첫눈처럼 소중한 만남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의 명인 지순자 선생님을 뵈었다 대설주의보를 몰고 온 첫눈이 실감이 나는 강남 포이동에 자리한 조용한 식당에서 제자와 동행한 선생님과 점심을 먹고 스튜디오로 옮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데 오늘 관장님을 뵈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라는 제자 분의 말처럼 필자 또한 절제하려 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았다 지순자 선생은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를 탄생시킨 인간문화재 성금연(1923~ 1986)선생이 어머니이며 해금의 명인으로 시나위 인간문화재였던 지영희(1909~1980)선생이 부친이시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현대 국악사 한마당이었다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란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전남 영암 태생의 김창조(1865~1919) 명인의 제자인 전남 나주 태생 안기옥(1894~1974) 명인과 전남 장흥 태생의 명인 최옥삼(1905~1956)을 사사한 바탕에서 전남 담양 태생의 성금연 명인이 창작한 가락과 선율을 추가하여 만든 음악이다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의 가장 큰 특성은 기악의 감성을 판소리의 서사적 전개와 같은 맥락으로 승화시킨 점이다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안기옥 명인은 누구인가? 1883년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김창조(1865~1919) 명인이 1902년 나주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공연장 끄트머리 외진 곳에서 신들린 듯 자신의 가야금 공연을 흉내 내는 어린 소년의 천재적인 손놀림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 아이가 누구냐고 수행한 일행에게 물었다 나주 농악대 상쇠 안영길의 아들이라는 대답에 그길로 안영길을 찾아가 소년을 데려갔다 당시 안기옥(1894~1974)의 나이 8살이었으며 김창조 명인은 10년간 소년 안기옥을 가르쳤다 이후 김창조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안기옥은 1896년 거문고 산조를 창시한 백낙준(1876~1939)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이후 안기옥은 1930년 무렵 전남 목포에서 활동하였으며 1934년 창설된 전통 판소리와 기악 연구단체 조선음악연구회에 몸을 담았다 이 단체는 훗날 조선성악연구회로 바뀌었다 이후 1936년 안기옥은 이북 함흥으로 이주하여 후진을 양성하던 중 1942년 당대의 명창 이화중선(1898~1943)과 해금과 가야금의 명인 유대복( 1907~1964) 그리고 충남 홍성 출신으로 당대 명 고수 한성준(1875~1941)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을 하고 다음 해 돌아왔다 일본 공연을 다녀온 안기옥은 하늘이 내린 민족의 몸짓을 사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와 전통 예술 연구에 열정을 펴다 조국 광복을 맞았다 다음 해 1946년 월북하여 ‘조선민족음악연구소’를 이끌며 북한 전통음악의 바탕을 일구고 1973년 세상을 떠났다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의 원형을 계승하고 있는 지순자 선생님의 철가야금 연주를 요청하였더니 흔쾌히 연주해 주셨다 선생님의 연주를 깊숙하게 바라보았다 전통 현악기의 대표적인 거문고와 가야금은 공명판 위에 줄을 놓는 현침을 통하여 부들 끝에 현을 맨다 이어 줄마다 안족을 세워 그 위에 줄이 얹힌다 많은 양금류도 이처럼 현이 얹히는 원리는 비슷하다 그러나 철현금은 기타와 같은 공명판 위에 줄이 얹히는 것이 아닌 떠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 큰 폭의 피치(pitch)를 가진 다양한 공명으로 많은 음색이 가능하지만, 연주자에겐 극히 섬세한 음감과 기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악기이다 가장 쉽게 말하면 다양한 음색의 섬세한 소리를 내는 만큼 그 소리를 표현케 하는 극히 섬세한 감각적인 기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많은 이야기가 가슴에 있다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