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의 세계유산]51. 이스라엘_마사다 (Masada) : 가장 치욕적인 승리이자 가장 아름다운 패배
유대의 왕 헤롯(기원전 37~기원전4년)은 사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마사다에 자신의 궁전을 짓는다 사해의 호수면 보다는 434미터 높은 곳에 위치한 마사다는 하늘에 떠있는 요새이다 모든 면은 2~300미터의 직각절벽이다 멀리서 보면 배처럼 생겼다 위에 오르면 축구장 4개정도의 평평한 평지가 펼쳐지는 것이 마사다의 지형이다 그런데 헤롯별장은 왜 이렇게 견고한 요새 위에 자리하게 된 걸까? 이는 로마인들이 세운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위협과 폭동에 대비해 피난처로 삼기 위해서였다 겁이 아주 많은 왕이었다 하지만 헤롯왕은 이곳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유대인을 피하려 지은 헤롯 왕의 별궁이 도리어 유대 민족의 피난처가 된다 서기70년 예루살렘을 함락한 로마군은 유대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예루살렘성전을 철저히 파괴한다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마사다로 몸을 피해 로마에 대항한다 쿰란에 있던 에세네파사람들도 황급히 두루마리 구약성서를 동굴에 숨겨두고 일부 두루마리 성서만 가지고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실바장군이 이끄는 1만5000의 로마10군단은 마사다를 포위한다 견고한 마사다를 포위한 채 공격다운 공격도 하지 못하고 2년이 흘렀다 실바장군은 공격을 위해 마사다 절벽 밑에 비스듬히 흙과 돌을 쌓아 나갔다 경사로 쌓는 작업은 안타깝게도 유대인 포로들이었고,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높아지는 경사로를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기 73년, 로마군이 마사다를 정복 했을 때 이들을 반긴 건 자결한 960구의 싸늘한 시신뿐이었다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승리이자 가장 아름다운 패배였다 그 때 살아남은 여자와 아이들이 마사다의 싸움을 후세에 전해주었다 이제 후손들은 자유를 위해 죽음을 택했던 960명의 영웅들을 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