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을 기다렸지만" 치유되지 않은 오월의 아픔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40년을 기다렸지만" 치유되지 않은 오월의 아픔 [앵커]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5·18 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고, 억울하게 죽은 자식의 한을 풀기 위해 5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경인 기자입니다. [기자] 이곳은 국립 518 민주묘지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서 있는 이곳은 80년 5월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묘역인데요.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해 이렇게 묘비만 쓸쓸히 놓여 있습니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사람은 242명, 그중 정부가 공식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84명입니다. 올해 81살이 된 차초강 씨의 큰 아들 이재몽씨도 84명 중 한 명입니다. 재몽씨는 스무살이던 80년 5월 할머니와 함께 담양 집을 나섰습니다.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차초강 / 5·18 행방불명자 이재몽씨 어머니] "시퍼런 차가 우리 재몽이를 싣고 가버리더라. 할머니는 똑똑히 보셨는데… 그랬더니 영영 이렇게 안돌아오고 말았어요."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나온 유골들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노모의 가슴에 평생 응어리로 남은 큰 아들. [차초강 / 5·18 행방불명자 이재몽씨 어머니] "유골도 못 찾고. 그냥 이렇게 있다가 가려니까 서운하고. 부모가 돼서 자식 유골도 못 찾아주고 갈까 싶어." 82살의 이근례 씨는 DNA 검사를 통해 큰아들의 유골을 찾았습니다. 5·18이 일어난 지 22년 만이었습니다. [이근례 / 故 권호영 열사 어머니] "유골 나왔다고 하면 촌구석이고, 제주도, 무주 구천동까지 다 다녔어요.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 큰아들은 이씨에게 여전히 아픔이자,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아들이 눈을 감은 옛 전남도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근례 / 5·18 희생자 故 권호영씨 어머니] "이렇게 잠잠했다가도 새끼(죽은 아들)의 말만 들으면 머리가 솟구쳐요. (가슴이) 벌떡이고." 4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아픔. 5월 가족의 5·18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연합뉴스TV 김경인입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 연합뉴스TV 유튜브 채널 구독 https://goo.gl/VuCJMi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연합뉴스TV / Yonhap News TV http://www.yonhapnews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