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봉화문화원에서 주관하는 관내 문화유적지 탐방 행사, 5월 첫번째 탐방지를 소개합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문수로 449-66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마애불 국보 제201호 높이 4 3m 암산을 파서 거대한 감실형 석실을 만들고 원각에 가까운 커다란 불좌상을 고부조로 새긴 것이다 현재 감실(龕室)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불상 자체도 다소 파괴되고 풍화까지 된 상태이다 감실형 광배에는 화불이 배치되었는데 일부가 깨어졌고, 불상 좌우에 공간이 있어서 협시보살이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내용얼굴은 넓고 큼직하며 양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풍화 때문에 원 모습이 다소 손상되었다 그러나 고졸한 미소가 전면에 나타나 있어서 박진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불(佛)의 위엄이 잘 나타나 있다 통견의 대의(大衣)는 가슴 등이 손상되어 불확실한 면도 있지만 장중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옷자락은 대좌를 덮어내려 상현좌를 이루고 있는데 역시 고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여러 특징은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연상되며 이런 특징이 더 진전되면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으로 이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애불상은 7세기 전반기의 옛 신라불상일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적 연대는 7세기 후반인 고신라 말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像))] 자세히 보면 광배 부분에 7분의 협시 보살이 보이고 아마도 항마촉지인 수인으로 추정되는 오른쪽 손부분으 훼손 되었고 부처님 코 부분을 갈아 마시면 아들을 얻는 다는 속설로 코 부분도 형상만 남아 있으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외부 전각은 불상의 부식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차례에 걸쳐 축조되었다 이곳은 "한절(큰 절)"리아 불리운 거대한 사찰이 있언던 자리로 조선 정조(18세기) 때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智林寺在文殊山)’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까지 사찰이 존속했던 것을 추정되며 현재도 지림사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경북 봉화는 신라시대 고구려와의 국경지역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 불교 전파를 통해 지역방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중요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부석사를 위시한 화엄종이 번창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웅전 뒤 절벽 바위에도 희미하게 형체만 남아 있는 마애불을 볼 수가 있으니 둘러 보시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