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여옥의 노래 (1956)

주현미 - 여옥의 노래 (1956)

노래 이야기 프랑스어 교수인 양명환을 사랑하는 두 명의 여대생이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사이였던 여옥과 명숙은 명환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앙숙이 되고 맙니다 양명환은 여옥을 사랑하게 되고, 이에 질투심을 참지 못한 명숙은 이간질과 농간으로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어 놓습니다 훗날 오해가 풀려 여옥은 명환을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지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처럼 느껴지시나요? '여옥의 노래'는 1957년 제작된 영화 '산유화'의 주제곡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정비석 선생님이 1955년 여성잡지 '여원(女苑)'에 연재한 소설 '산유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1966년 박종호 감독의 영화로 신영균, 고은아 선생님 등이 출연하며 다시 한 번 리메이크되기도 했답니다 6 25 전쟁이 끝난 뒤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작품의 수나 질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입니다 반공영화를 시작으로 멜로, 희극, 시대극 등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1950년대 후반에는 1년에 100편에 달하는 작품이 발표되면서 이후 1960년대에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산유화'는 원본 필름이 소실되어 현재는 영화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점으로는 다소 유치하고 뻔한 스토리의 멜로물로 인식될 법한 '산유화'이지만 그 당시 영화를 접했던 관객들은 달랐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사랑했던 님을 다시 찾았을 때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슬픔을 담아낸 '여옥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 영화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간 뒤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주현미TV를 통해 '카츄샤의 노래'로 송민도 선생님의 곡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클래식 성악 창법을 바탕으로 품격있는 노래를 들려주셨던 송민도 선생님의 곡들은 세월이 흘러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꾀꼬리 같은 가느다란 음색이 대다수였던 당시의 가요계에서는 묵직한 저음을 가진 색다른 매력을 가진 가수셨던 셈이지요 '카츄샤의 노래' 또한 영화에 삽입된 곡으로 그 시절 제작된 영화의 주제곡을 많이 불렀던 가수이기도 합니다 1925년 수원에서 출생한 송민도(宋旻道) 선생님은 목사님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사를 자주 다니셨다고 합니다 평안남도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와서 이화학당을 졸업하셨지요 졸업 후에는 만주에서 유치원에 잠시 근무하셨고 결혼하면서 연길로 이주하게 됩니다 해방 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와 정착하면서 가수의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1947년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의 전속가수 1기로 발탁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셨는데요 데뷔곡으로 발표한 '고향초'가 널리 히트하게 되면서 송민도라는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송민도라는 이름이 여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음반사 측에서 송민숙이라는 이름을 예명으로 만들어 발표하게 되었지요 6 25 전쟁 중에는 국군 정훈공작대 소속으로 위문 공연을 다녔고, 종전 후 발표한 '나 하나의 사랑'과 우리나라 드라마 OST 1호곡인 '청실 홍실'로 최고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여옥의 노래', '카츄샤의 노래', '목숨을 걸어 놓고', '서울의 지붕 밑', '하늘의 황금 마차', '청춘 목장' 등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님의 모습 찾아서 외로이 가는 길엔 낙엽이 날립니다 들국화 송이송이 그리운 마음 사랑은 말없구나 어드메 계시온지 거니는 발자욱 자욱마다 넘치는 이 마음 그리움을 내 어이 전하리까 소나무 가지마다 그리운 말씀 호수도 잠자는가 어드메 계시온지 그 날의 손길을 가슴속에 지니고 이 목숨 다하도록 부르다 가오리까" 지난 2006년 KBS 가요무대가 1000회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던 송민도 선생님이 잠시 내한하셨고 TV를 통해 그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계셨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나 하나의 사랑'을 들려주셨지요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노래는 영원한 것 같습니다 긴 세월동안 잔잔하게 사랑받아온 노래 '여옥의 노래'를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