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MBC뉴스]R아침용]유교현판이야기 34편 임하 백운정

[안동MBC뉴스]R아침용]유교현판이야기 34편 임하 백운정

2018/07/08 16:39:30 작성자 : 이호영 □ 백운정(白雲亭) 유교현판 이야기: -오늘은 과거를 단념하고 고향에서 부모봉양과 문중의 대소사를 맡아 다스렸던 귀봉(龜峯) 김수일 선생(金守一, 1528~1583)이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경동로)에 세운 ‘백운정(白雲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귀봉 김수일은 어려서 가학으로 글을 익힌 뒤 퇴계 문하에 나아가 수학했으며, 2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42세에 아우 김명일과 대과 응시를 위해 서울에 갔다가 아우의 건강이 위급하자 서둘러 귀향길에 올랐으나 결국 중도에서 아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뒤 그는 과거를 단념하고 형님을 대신해서 부모봉양과 집안의 대소사를 다스리는데 전념하였습니다 특히 ‘백운정’을 짓고는 아름다운 계절이나 좋은 날에 노인들과 벗들을 맞이하여 잔치하고 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뒤에 보이는‘백운정’에서 ‘백운’의 의미는 당나라 초기의 현신인 적인걸(狄仁傑)의 “높은 산에 올라가 흰 구름 바라보니, 그리운 부모님 그 아래 계시네[登高山望白雲 思親在其下]”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 ‘백운’의 이미지는 목가적(牧歌的)인 뜻을 지닌 것이 아니라 ‘선영이나 부모형제가 계신 고향’을 의미합니다 정자 좌우의 주사로 들어가는 중문과 동편에 조양문(朝陽門), 이요문(二樂門)의 편액은 모두 퇴계 이황의 친필입니다 특히 ‘이요문’ 편액에는 작은 글씨로 세로로 ‘도산심획(陶山心畵)’이라고 쓰여 있는데, 글씨를 대하는 퇴계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운정’ 글씨는 조선시대 전서(篆書)의 대가로 알려진 미수 허목(許穆)이 썼습니다 좌측에 ‘구십노인서(九十老人書)’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 그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자 주인인 귀봉 기수일 선생의 강정우음江亭偶吟 시를 한 번 읊어보겠습니다 州城西北洛江湄 고을 성 서북쪽 낙동강 물 가 靑?(장)開成小閣危 푸른 산 언덕에 작은 정자 우뚝하네 才子乘閒來讀易 재자들은 한가한 틈에 와서 주역 읽고 大兄携酒坐吟詩 대형은 술 가져와 앉아 시를 읊조리네 ? 장(높고 가파른 산 장) 山+章 이 시는 한마디로 백운정 주위 풍광의 빼어남을 묘사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형제들과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고, 시주(詩酒)의 여흥을 즐기기도 하는 모습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묘사하였습니다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 형제들이 함께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며, 나아가 부친인 청계 김진에 대한 효사(孝思)의 마음을 의탁했던 추모의 공간이었습니다 임하댐 건설로 주위경관이 다소 변했다지만 백운정 언덕 아래 유유히 흘러가는 반변천은 의성김씨 내앞마을의 역사를 상징하듯 예나 지금이나 쉼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유교현판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의 권진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