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선 시낭송 아카데미 그해 겨울의 연가 김병걸
인터뷰 작사가 김병걸 "인생은 속도나 부피가 아니라 방향"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작사가 김병걸(60)은 200명이 넘는 작곡가와 작업하며 2천 곡이 넘는 노래를 만들어 왔다 ‘안동역에서’, ‘다 함께 차차차’, ‘찬찬찬’, ‘서울아 평양아’ 등 히트곡도 부지기수다 대중가요와 40년을 함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즐거움을 선물한 그를 만나봤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안동역에서’ 가사 중) 국민애창곡 ‘안동역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경쾌한 가락에 담아 애잔하게 읊고 있다 김병걸의 가사는 이렇듯 사랑을 주로 이야기한다 진부하고 통속적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의 가사는 이해하기 쉽고 부르는 맛도 있다 그의 가사가 담긴 노래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김병걸은 “좋은 가사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작사가, 작곡가, 가수, 국민이 알고 있다”며 “시간과 공간, 사연이 마치 그림처럼 구도가 잘 잡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배고픈 시인에서 성공한 작사가로 김병걸은 경북 의성, 안동, 예천이 접하는 낙동강 변 마을에서 9남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형제들이 많아 대학 갈 형편이 안됐다 “내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뭘까 고민했죠 이전부터 시를 썼으니까 글을 써 볼까 해서 서울로 올라왔죠 그런데 문학가들은 너무 배고프고 궁상맞기 짝이 없었어요 시로 등단도 했지만 직업으로 하면 제대로 살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사를 쓰기로 했죠 ”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조그만 신문사의 기자, 잡지사 편집장을 하고 간판 기사, 다방 DJ, 도서 외판원, 레코드사 문예 담당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다 1년 정도는 화가가 되겠다며 캔버스를 들고 전국을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기에는 숫기가 없고 봉급도 터무니없이 적어 번번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한 달에 10만 원을 벌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저녁마다 가사를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가사도 돈이 되지 않았다 저작료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이후 저작권이 법과 제도로 보장을 받으며 비로소 생활도 나아졌다 “살아보니까 인생은 속도나 부피가 아니라 방향인 것 같아요 시에서 벗어나 작사로 방향을 튼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저를 필요로 하는 가수와 작곡가가 많아져서 이제 도망갈 수도 없죠 ” ◇ 역사와 민족 정서 담은 가사가 진짜 김병걸이 작사한 노래는 대중가요, 찬불가, 동요, 시·군 헌정가 등 2천 곡이 넘는다 히트한 노래는 ‘찬찬찬’, ‘다 함께 차차차’, ‘도시의 삐에로’, ‘끝없는 사랑’, ‘사랑이 남아있을 때’ 등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가사는 따로 있단다 바로 명승고적, 역사, 민족 정서를 용해한 작품들이다 “나훈아가 부른 ‘분교’에는 이농 현상으로 농촌 학교가 분교나 폐교가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고, 김지애의 ‘남남북녀’는 이농 현상에 따른 농촌 총각의 아픔을 그린 거고, 현철의 ‘서울아 평양아’는 통일 무드를 조성한 노래죠 이런 노래들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가요의 목적을 달성한 노래라고 봐요 ” 요즘 가요의 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노래가 가사 위주에서 비주얼 위주로 바뀌었죠 가요는 문학 더하기 음악이에요 바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거죠 좋은 가사도 있지만 맞춤법과 시제가 틀리고, 이해되지 않는 가사도 너무 많아요 수준 미달이죠 문학적 소양이나 지식을 갖고 가사를 써야 할 것 같아요 ” ◇ 하루 100편도 쓰는 ‘작사 달인’ 김병걸은 스스로 ‘작사 달인’이라고 부른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100편도 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가사가 술술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에 작업실이 있지만 그가 주로 작업하는 공간은 낙원동에 있는 다방이다 약속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한 줄, 또 한 줄 써내려간다고 한다 그는 “작사는 타고난 재주가 99%이고 노력이 1%”라고 말했다 물론 “자기 극복과 노력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또 작사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다 우선 시는 형식이 자유롭고 언어적인 유희를 즐길 수 있지만 가사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야 하고, 가수가 1분대 안에 부를 수 있게 글자 수를 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사가 탄생한 후에도 작곡가, 가수, 제작자, PD라는 ‘검문소’를 거쳐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고, 대중이 마음에 들어 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병걸은 “가수들에게 죄인이 된 심정으로 산다”고도 했다 가사가 좀 더 좋았으면 곡을 받은 가수가 더 빛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자책감과 미안함 때문이다 “노래 하나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위대한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작사가로서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큽니다 ” ◇ 가요 가사 정리한 ‘낮달’ 출간 김병걸은 최근 가사집 ‘낮달’을 출간했다 그가 작사한 작품 중 좋은 가사와 가수들이 요청한 가사 등 280여 개를 골라 담았다 자신의 지난 기록을 남기고 싶었고 작사가의 역할을 보여주고 ‘폼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가사는 뭐가 다를까’, ‘어떻게 썼을까’를 보여주고 싶었죠 책 표지에 ‘한국가요의 중심’이란 말을 썼는데 작사가로서의 자부심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 김병걸은 책에 아직 수록하지 못한 작품을 정리해 가사집을 계속 낼 계획이다 그는 최근 미국 포크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무척 부러워했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가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예술원에 대중문화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홀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대중문화인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가사는 어떤 것인가’, ‘한국 가요사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등 한국가요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저의 작품을 전시할 기념관이 생기고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비도 섰으면 해요 특히 임진각에는 ‘서울아 평양아’ 노래비가 들어섰으면 좋겠어요 물론 노래도 부지런히 만들어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