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법문] 참나를 만나는데 공허해요 _홍익선원.윤홍식.Z76
참나라는 건, 참나를 느낀다 하는 것도 다 에고입니다 황홀하네! 뭐하네! 다 에고입니다 참나는 그런 자리가 아니죠 참나를 만나면 황홀하다는 건, 에고가 그렇게 느끼는 거죠 참나는 순수존재감이에요 그냥 우리의 순수존재감 여기는 걱정이 하나도 없죠? ‘황홀하다’ 그러면 (왜냐면) 보세요 우리가 ‘황홀하다’ 하면 비교가 이미 붙어요 더 황홀한 게 있을 수 있고, 덜 황홀한 게 있고 ‘광명하다’ 그러면 광도가 요정도 돼야 참나 입니까? 아니면 살짝 어두우면 참나가 아닙니까? ‘광명하다’ ‘황홀하다’ 이런 모든 것은 에고예요 에고가 참나를 보고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황홀하다만으로 참나를 찾으려면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요 정도 황홀함을 참나라고 하는지? 요 정도의 황홀함인지? 이 느낌을 가지고 우리가 비교하게 되면 말에 떨어져요 참나는 그게 아닌데, 에고가 참나를 만나고 느낀 느낌들을 가지고 비교하는 중에 우리가 참나를 그때의 참나, 이때의 참나, 또 우리가 쪼개게 되지요 그러면 본인이 흔들리게 됩니다 참나라는 건 어떻게 만나도 우리 안에 있는 존재감 그 자체는 참나고 한 생각, 한 느낌, 하나의 감정이라도 일어나면 그건 다 에고의 세계라는 것을 아시고, 이 두 세계를 정확히 아시고 찾아 들어가시면 ‘우리가 참나를 늘 느끼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고 ‘그 느낌은 시시각각 계속 달라진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가 다양한 참나의 만남 속에서도 참나의 본질을 포착해야 끝납니다 그 전에는, 이 방황이 안 멈춰요 황홀하고 그 순간 시공을 초월한 것 같아도 시공을 초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또 다 하고 있어요, 에고는 초월했다가도 찰라찰라 우리는 또 생각을 일으켜서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떠듭니다 결국 그 부분은 에고죠 그 만큼은 에고죠 그렇게 만나건 이렇게 만나건 내가 울부짖으면서 참나를 만나건, ‘너는 늘 여여하구나!’하는 걸 확인할 때까지 참나를 계속 만나야 동정(動靜)간에 오매일여, 자고 깨고 간에, 움직이고 안 움직이고 간에, 한 생각을 일으키고 안 일으키고, 감정을 일으키고 안 일으키고 간에, ‘고놈은 늘 고놈이구나!’하는 이 확신을 얻을 때까지 하셔야 돼요 본 동영상은 흥여회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도와주신 '흥여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홍익학당 네이버 카페 -홍익학당 홈페이지 -본 동영상의 외국어 번역 및 녹취작업 등 재능기부를 받습니다 * 홍익학당 후원하기 국민은행 879601-01-245696 (흥여회) * 문의전화 02-322-2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