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 201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백용성의 저서 조선글화엄경 선한역대방광불화엄경 신역대장경 조선어능엄경은 백용성조사 기념관에 보관되어있다 이 서적들은 일제 강점기 백용성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불교 경전들로 근대 한국 불교의 대중화와 포교 방법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종교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당시 한글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백용성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였으며 여러 불교 경전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한 인물이다 예견된 탄생 1864~1877 고려 충신 백장선생의 후예로 죽림마을에서 태어났다 무ㅅ자이니라 1877~1910 예정된 석가여래부촉법 제 68세 조사로 등단하다 14세에 출가하여 대각의 횃불 1910~1916 불교중흥 · 민족중흥 일제 강점기 불교개혁을 통해 민족중흥을 발원하기위해 서울 종로에서 민가를 개조하여 대각사를 창건하고 호국호법을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한다 기미년 3·1 독립운동 판결문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한 47인의 경성지방법원 형사부 조선총독부 재판소의 판결문 등본 체 와 용 1916~1919 1912년 용성조사는 6년간 전국 방방곡을 순방하면서 3정승 6판서 8도 감사 360 고을 수령 방백을 지낸 이들을 만나 독립운동의 후원을 간청하였으나 불응해 이를 안타까워 한다 만해 한용운을 만나 용성조사는 호법을 담당하는 대체가 되고 한용운은 호국을 담당하는 대용이 되어 천도교와 기독교의 대표와 민족대표들을 설득하여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게 하므로서 3·1독립 만세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은 전국민이 동시에 밀물같이 터져나온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비폭력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강점 아래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대한독립만세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1919~1623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3·1 독립만세운동은 불교계를 대표한 용성조사를 위시로하여 33인으로 탑골공웡 인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치고 참석자 전원인 29명이 일본경찰에 연행되었다 1921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용성조사는 대각사를 중심으로 삼장역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역경불사와 새 불교운동인 대각교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독립활동 1923~1940 불경의 한글화와 저술 ,포교와 교화, 조선불교의 개혁, 찬불가를 직접 작시하는 등 불교 중흥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일제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열반 1940 수법제자여 시자여 대중이여 그동안 수고했도다 나는 간다 경전의 한글화 한문으로 되어있는 불교경전의 한글화에 착수한다 한문경전을 단순히 토만 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 상세히 설명해 두었다 산간에서 거리로 불교 스스로가 대중에게로 다가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시대에 부흥하는 불교를 위해 마음을 담는 수행의 기본인 수심론을 비롯해 20여종의 어록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