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MBC뉴스] R)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4)..신돌석(요약)

[안동MBC뉴스] R)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4)..신돌석(요약)

2015/04/24 09:56:30 작성자 : 조동진 ◀END▶ 경북지역 독립운동가들을 탐방하는 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경북북부지역과 동해안 일대에서 평민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조선후기 신분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신돌석 장군을 조동진기자가 요약했습니다 ◀END▶ ◀VCR▶ 평민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1878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나 1906년 4월 본격적으로 의병활동에 나섭니다 유생의병은 향교나 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지만 신돌석 장군은 평민의병장답게 주막앞에서 활빈당 동지 3백명을 모아 2년 6개월간 집중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합니다 ◀INT▶ 김희곤 교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영덕과 청송,영양,영해 일대에서 사람,무기, 식량을 확보하고 삼척,울진지역에 와 있던 일본군 전진기지를 집중 공격하는데 2년 6개월간 6차례나 공격합니다 " 신돌석 장군이 신출귀몰한 의병활동을 전개하자 일본군은 토벌대를 구성해 검거에 나섰지만 그때마다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대항했으며 1908년 만주이동 직전 순국하게 됩니다 ◀INT▶ 김희곤 교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일본군은 '경찰대와 수비대,헌병대에 의해 토벌당한 일이 수십차례였으나 그가 들고 나는 것이 너무나 쉽고 자재용이해서 지금도 체포 되지 않고 영양지방을 움직이고 있다 '라고 보고할 정도였습니다 " 신돌석 장군은 투쟁하는 과정에서 단 한사람의 밀고자도 없었고 그의 부장급에는 4-50대 유생이 있었다는 점은 조선후기 신분사회의 변화를 시사합니다 ◀INT▶ 김희곤 교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이 이야기는 30대 평민의병장 아래 지배계급이 부장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고 이것은 조선 중세사회가 근대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역사적 발전의 중요한 증거가 아닐수 없습니다 " mbc news 조동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