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 산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날아오른 새일까. 그 소리마저도 눈 오는 소리의 일부 같다.

집 뒤 산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날아오른 새일까. 그 소리마저도 눈 오는 소리의 일부 같다.

20대 중반의 한강 작가가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에 적었던 '두 문장'은 그 당시 그의 혼란과 고뇌를 그대로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문장들은 단순히 하루를 시작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반영하는 질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끊임없이 삶에 대한 의문을 던졌을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그의 일기장 곳곳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 옥상 난간에 손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없이 조용히 떨어지는 눈송이들 눈이 점점 쌓이는 옥상 바닥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이곳이 정말 겨울 한가운데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이미 하얀 이불을 덮은 것처럼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다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는데, 그 위로 내려앉은 눈이 마치 얇은 장식 같아 가까이 보이는 마을 지붕들도 어느새 눈으로 덮여가고 있다 거리에는 인기척이 없다 오직 눈 내리는 소리만이 귓가를 간질인다 눈송이 하나가 손등에 내려앉는다 잠깐 동안 녹지 않고 그 결정을 보여준다 얼마나 정교한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체온에 녹아 금세 사라진다 어쩌면 이 순간이 그렇게 쉽게 지나가버리는 시간들 같을지도 모른다 숨을 내쉬면 흰 입김이 나와 눈 앞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진다 찬 공기가 폐속 깊이 들어오고, 마치 이 겨울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집 뒤 산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날아오른 새일까 그 소리마저도 눈 오는 소리의 일부 같다 내 발자국도 언젠가 눈 속에 덮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서서, 이 고요한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고 싶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조각들 사이로, 나도 잠시 투명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