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알고 입자!] 트리플S, 스피드러너의 브랜드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의 창시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디자이너 알고 입자!] 트리플S, 스피드러너의 브랜드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의 창시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1900년대 스페인왕가와 귀족들을 열광시켰던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를 빛내던 디자이너이자 완벽주의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현 명품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창시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입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2019년 기준 무려 124년 전인 1895년 스페인 북부 게타리아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발렌시아가의 어머니는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던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발렌시아가도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도우며 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에 스스로 옷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휴가로 놀러 온 한 귀족 부인의 드레스를 완벽하게 카피하여 만들어 보여줍니다 이에 귀족 부인은 “프랑스 장인이 만든 오뜨꾸뛰르 보다 더 꼼꼼한걸? 대단하다”라는 말을 했고 발렌시아가의 재능을 눈치챈 귀족 부인은 바로 그가 산 세바스찬 지역에 있는 부티크에 그를 추천해 그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줍니다 당시 산 세바스찬 지역은 스페인의 완실과 부유층의 휴양지로 유명했고 그곳에서 발렌시아가는 스페인 부유층의 문화를 자연스레 익히며 성장합니다 이후 1911년 그는 파리 루브르 백화점의 산 세바스찬점에서 여성 정장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발렌시아가는 2년 뒤 수석 자리에 발탁됩니다 그렇게 그는 파리의 화려한 패션 산업을 접하면서 최고의 디자이너가되기로 결심하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그가 만든 첫 독립브랜드는 어머니의 이름을 딴 에이사라는 이름의 브랜드였습니다 그의 옷을 찾는 고객은 주로 스페인의 왕실이나 최상류층이었고, 그렇게 그는 스페인에서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의 내전으로 인해 그는 브랜드의 무대를 파리로 옮기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랜드 발렌시아가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는 깊은 역사를 지닌 브랜드입니다 그는 완벽주의를 토대로 우아함을 가진 최고의 의상을 제작하며 까다로운 최상류층을 만족시키기 시작했고 17세기의 화가 벨라스케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첫 파리컬렉션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 컬렉션은 파리지앵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발렌시아가는 하루아침에 파리의 유명인사가 됩니다 이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고도 굳건히 살아남은 브랜드가 됩니다 그렇게 1950년대로 들어섭니다 1950년대는 패션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새로운 옷들이 등장한 시기입니다 이때 발렌시아가는 굉장한 활약을 보여줍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 패션계는 크리스찬 디올이 이끌고 있었고 디올의 허리라인에 굴곡을 주어 허리를 강조한 ‘뉴룩’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렌시아가는 이에 도전장을 내밀듯 ‘뉴룩’과 정반대인 ‘코쿤라인’을 선보입니다 당시 코쿤라인 드레스는 적어도 10년은 앞서간 디자인이었습니다 게다가 1947년 발렌시아가는 르딕스라는 향수를 선보였는데 이는 당시 향수계의 1위 샤넬 ‘NO 5’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나가는 디자인으로 발렌시아가는 예언의 불꽃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발렌시아가는 이브닝코트와 이브닝드레스를 디자인하여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매번 컬렉션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옷들을 선보이며 샤넬의 위치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게다가 가브리엘 샤넬이 직접 “발렌시아가만이 진정한 쿠튀리에이고, 그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불과하다 ”라고 말하며 그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발렌시아가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발렌시아가를 모든 디자이너의 마스터라고 부를 정도였죠 그중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는 지방시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지방시 설립자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발렌시아가에게 큰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더 간편하고, 싸게 만들어지는 프레타 포르테가 유행을 하게되고 값이 비싸고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오트 쿠튀르는 시대에 뒤처지며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됩니다 발렌시아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967년 S/S컬렉션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이후 발렌시아가는 1972년 자신을 패션계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준 귀족 부인의 손녀 웨딩드레스를 유작으로 1972년 3월 23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발렌시아가는 끝이 납니다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 #트리플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