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울며 헤진 부산항 (1939)
노래 이야기 '가황'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지요 오늘은 '울며 헤진 부산항'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39년, 남인수 선생님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절하게 부산항의 이별을 표현해 냈습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수많은 젊은이들은 강제 징용의 여파로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배를 타고 일본 본토로 향했습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적셨고 이는 곧 일본 경찰에도 보고가 되었지요 부산경찰서에 연행된 남인수 선생은 반란 음모 혐의로 자백을 종용 받았지만 가수인 그에게서는 어떠한 답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풀려나고 '울며 헤진 부산항'은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히 그리는 노래로 남게 되었답니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 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끼리 음 달빛 아래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 곳 없는 검은 수평선 이별만은 무정터라 이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 음" 부산(釜山)의 '부'와 시모노세키(下關)의 '관'을 따서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 혹은 관부(關釜)연락선이라 불리던 이 배는 1905년 일본의 대륙 진출 정책의 일환으로 개설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략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이 노선은 부산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지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또한 같은 해인 1905년에 개통되면서 부산은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사의 찬미'로 유명한 여가수 윤심덕과 연인이었던 김우진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1926년 8월 4일에 일어난 이 사건의 장소가 바로 부관연락선입니다 또 조용필 선배님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등장하는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또한 이 배를 가리키고 있지요 역사만큼이나 슬픈 사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부관연락선은 1945년 미국에 의해 격침되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한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1970년부터는 부관페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왕복하고 있다고 하네요 희망도 없이 깜깜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타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요 시대를 넘어 오늘은 1939년의 연락선을 올라타고 떠나가봅니다 막연하게 기억될 법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 가요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답니다